포털 활용 대신 SNS 해시태그 대세
“찐팬들이 추천한 음식점이라면 진짜 맛있을 것” 믿음 커지며
관련 해시태그 모은 사이트까지
낚시성 후기 걸러내기 딱 좋아 여행지-전시회 검색으로 확산
“이 음식점요? ‘아이돌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찾아왔어요.”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대학생 김태희 씨(20)는 맛집 찾는 요령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었다. 맛집과 아이돌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김 씨는 “요즘 10대, 20대에겐 꽤나 알려진 방법”이라며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돌 해시태그가 달린 음식점을 검색했다”고 귀띔했다. 고깃집 사장인 이범 씨(40)도 “주말엔 고객의 80%가 아이돌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 온 팬이거나 그 글을 검색해 찾아온 이들”이라고 했다.
MZ세대의 맛집 찾기 방식이 달라졌다. 포털 사이트에서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건 하수들. 소셜미디어에서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활용한다. 방법은 이렇다. 예를 들어, 갈비가 먹고 싶다면 소셜미디어에 갈비를 검색한 뒤 여기에 아이돌 이름이 달린 해시태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적중률을 높이려면 아이돌 굿즈가 들어간 사진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찐’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카드나 캐릭터 인형과 함께 음식이나 식당을 찍어 올리면 더 맛있는 음식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은 팬들의 아이돌 사랑에서 비롯됐다. 약 1, 2년 전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음식 취향을 파악한 뒤 그들에게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를 알려주고픈 마음으로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한다. ‘#승연아_우즈야_여기야’ 식이다. 이런 팬 문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같은 세대에겐 ‘직접 발품 팔아 찾은 진심의 맛집’이란 인식이 퍼진 것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MZ세대에게 ‘신상 맛집’으로 떠오른 음식점 8곳을 찾아보니 해시태그의 용도는 좀 더 구체화됐다.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경제력이 있는 30대 이상 팬이 많은 강다니엘의 팬이 달아놓은 해시태그를 참조한다. 중국 요리가 먹고 싶을 땐 중국 국적 멤버가 많은 아이돌 그룹을 검색한다. 마포구의 한 떡볶이 가게에서 만난 윤정민 양(16)은 “보이그룹 NCT를 검색해 왔다. 멤버가 23명이라 게시물도 많은 게 NCT 해시태그의 장점”이라고 했다.
MZ세대에게 이런 유행이 퍼지면서 아이돌 해시태그만 따로 모아둔 온라인 검색 사이트가 등장했을 정도다. 요즘엔 아이돌 해시태그로 미술전시나 여행 장소를 찾기도 한다. 대학생 김소민 씨(23)는 “9월에 아이돌 해시태그 검색 사이트에서 ‘강릉’을 검색해 팬들이 추천한 강릉의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아주 좋았다”며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 자연스레 다른 분야 추천도 믿고 찾아가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돌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청년 세대의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들의 추천은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을 걸고 올리기 때문에 진실성과 신뢰성이 담보된다고 여긴다”며 “온라인에 광고나 다름없는 낚시성 후기가 넘쳐난다는 현실에서 젊은 소비자들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새 활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해시태그 활용도가 높아지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아이돌 해시태그로 위장한 광고가 조금씩 생겨나는 추세”라며 “MZ세대의 문화를 돈벌이로 악용하면 이 역시 결국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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