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161분-한산 150분 달해
내달 개봉 아바타는 3시간 훌쩍
짧은 영상 시대에 흥행여부 관심
“내용 탄탄하면 길어도 문제없어”
러닝타임이 길게는 3시간이 넘는 ‘길고 긴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쇼트폼 콘텐츠가 각광받는 등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점점 더 짧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보란 듯 역행하는 영화들이다.
포문을 연 건 9일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블랙 팬서’(2018년) 후속편으로 러닝타임은 2시간 41분이다.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국내외 상업영화 중엔 재개봉작을 제외하면 ‘시맨틱 에러: 더 무비’(2시간 57분), ‘더 배트맨’(2시간 56분) 이후 가장 길다.
16일엔 ‘한산 리덕스’가 개봉한다. 7월 개봉해 726만 명을 모은 ‘한산: 용의 출현’의 감독판으로 러닝타임은 2시간 30분이다. ‘한산: 용의 출현’보다 21분 늘어났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중에선 단연 가장 길다. 끝판왕은 다음 달 중순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이다. ‘아바타’(2009년) 후속편으로 3시간 10분 내외로 알려졌다.
관심은 긴 영화의 흥행 여부다. 올해 3월 개봉한 ‘더 배트맨’은 관객 90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영화계에선 쇼트폼 콘텐츠가 확산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인기로 영상을 10초씩 빠르게 건너뛰며 혼자 보는 문화가 퍼지는 등 팬데믹 기간 급변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간과한 채 긴 러닝타임을 고수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긴 러닝타임의 극장용 영화가 짧은 영상 대세 시대에 흥행으로 가는 차별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를 대로 오른 관람료(주말 일반관 1만5000원)를 내고 영화관에 갈 거면 볼거리가 가득한 데다 러닝타임도 길어 영화관에 간 김에 오랜 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똘똘한 한 편’을 보려는 선택과 집중형 관객이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심해 지상 공중을 넘나드는 화려한 액션, 상상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볼거리, 보는 재미를 끌어올리는 예술적 경지의 음악, 철학적 메시지, 개그 등이 어우러지면서 2시간 41분이 1시간 반처럼 지나간다. 볼거리와 서사의 대향연에 상영시간 내내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유일하게 보유한 최강국 와칸다가 비밀의 수중 국가 탈로칸과 전면전을 치르는 내용의 이 영화는 OTT 전성시대에도 극장이 필요한 이유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아바타: 물의 길’을 연출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도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해왔다. 그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상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나 “쉽게 볼 수 있다면 특별함은 사라진다. 쉽게 경험하지 못하기에 손꼽아 기다리고 친구와 함께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있다”며 “아바타가 바로 그런 영화”라고 자신했다. ‘아바타: 물의 길’ 주요 장면을 18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공개된 이후 스케일과 기술이 압도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관객 중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쾌감을 극대화하고자 개봉일까지 일부러 영화관을 찾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OTT의 확산은 짧은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소비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반대로 재미가 있으면 시리즈 10편을 몰아보는 등 매우 긴 영화나 마찬가지인 시리즈에 익숙해지게 만들기도 했다”며 “빈틈없이 꽉 채운 영화라면 아무리 길어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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