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툰 사람들’ 26일 개막 장진 감독
“더 나이 들면 못 할 것 같아 연출 결심
과하게 달달한 캐릭터-장면들 들어내
억지웃음 만들려 영혼 팔지는 않을 것”
“더 나이 들면 못 할 것 같아서….”
영화감독 겸 연극연출가인 장진(51)은 26일 개막하는 연극 ‘서툰 사람들’을 10년 만에 연출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서툰 사람들’ 대본을 처음 쓴 건 스물세 살 군 복무 시절. 제대를 3주 남기고 쓰기 시작해 제대 5일 전 완성했다. 1995년 서울연극제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하며 20대 중반의 장진을 연극계 스타로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15일 만난 그는 “사실 이 작품은 지금 제게 ‘내 인생에서 버리느냐 가져가느냐’ 기로에 서 있다. 늦기 전에 한 번은 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에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툰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갇힌 어수룩한 인물들이 뒤엉키며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다. 여교사 화이(김주연 최하윤 박지예)가 사는 독신자 아파트에 어설픈 좀도둑 덕배(이지훈 오문강 임모윤)가 침입한다. 여기에 기러기아빠 등 1인 3역으로 출연하는 멀티맨(이철민 안두호)까지 합류해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진다.
“처음 대본을 쓴 건 약 30년 전, 마지막 연출도 무려 10년 전입니다. 그만큼 수정할 게 많았어요. 과거의 나는 참 해맑았는지 캐릭터와 장면이 과하게 달달해요.(웃음) 관객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양새도 꼴 보기 싫어 일부 들어냈습니다.”
그가 ‘언어극’이라 표현할 정도로 ‘서툰 사람들’에는 대사가 많다. 배우 3명이 110분간 퇴장도, 암전도 없이 오로지 언어로만 무대를 채운다. 그는 “감정에 집중하면서 뒤에 딸려오는 말을 쉬이 내뱉을 수 있는, 소위 말해 ‘언어가 되는 배우’ 위주로 꾸렸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 출연한 배우들은 27년 지기 이철민을 제외하곤 모두 ‘새 배우’다. 지난해 말부터 대학로를 돌아다녔던 그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일일이 대본을 건넸다고 한다. 그는 “수면 위에 떠오르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배우들이다. 서로 함께 즐기며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8년) ‘간첩 리철진’(1999년) ‘킬러들의 수다’(2001년),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연극 ‘웰컴 투 동막골’(2002년) ‘박수칠 때 떠나라’(2000년)와 ‘허탕’(1995년)…. 대학로와 충무로를 넘나들며 만든 작품들은 ‘장진표 코미디’란 수식어를 낳으며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서툰 사람들’은 1995, 2007, 2012년 공연될 때마다 수많은 관객을 웃겨왔다. 2020년대 관객에게도 ‘장진표 코미디’는 통할까.
“정말 모르겠습니다.(웃음) 내 기억 속 관객들은 분명 반응했는데…. 나는 이 시대의 관객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을까? 설렘보단 긴장이 큽니다.”
못 웃길까 봐 걱정되지만 그는 품격만은 끝까지 놓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는 “품격 있는 코미디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선 그럴 수도 있다’는 과학적 인과관계에서 나오는 웃음”이라며 “억지 웃음을 만들려고 영혼을 파는 게 아니다. 그만큼 코미디는 어려운 장르”라고 말했다.
“저 역시 나이가 들수록 몸과 생각, 감각이 노쇠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우디 앨런(미국의 영화감독)은 한 명뿐일 텐데…. 계속해서 그런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희망은 가지고 가려 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