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 감독의 영화 ‘아워 바디’(2019년)에서 자영은 8년째 행정고시에 도전하다 스스로 시험을 포기한다. 조선 후기 학자 윤기(1741∼1826)는 과거에 연이어 낙방한 뒤 다음 시를 남겼다.
이 무렵 시인은 생원시 2차 시험인 회시(會試)에서 최고 성적을 얻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됐다. 시인은 과거 공부 십 년 동안 살가죽과 뼈만 남았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旣登上第,無故被拔,漫吟遣懷’). 그럼에도 그는 영화 속 자영과 달리 이후로도 30년간 과거 응시를 이어갔다. 10년 뒤 겨우 합격해 성균관 유생이 됐지만, 이후로도 20년간 문과(文科)에 급제하지 못했다. 오랜 낙방으로 인한 궁핍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성균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처지를 한탄하며 그만두자고 다짐하기도 했지만(‘自嘆’), 끝내 과거 응시를 포기하진 못했다.
시인이 끼니를 위해 성균관에 출입했던 것처럼, 거스 밴 샌트 감독의 영화 ‘굿 윌 헌팅’(1997년)의 주인공 윌도 생계를 위해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윌은 부유층 위주의 대학 교육에 냉소를 보낸다. 잘난 척하는 하버드대 학생을 더 우월한 지식으로 제압하고, MIT 학생 누구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단번에 풀어낸 뒤 그들의 특권의식을 조롱한다. 어느 사회나 교육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늘 문제투성이다. 시인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균관의 교육 내용과 생활상을 읊은 시를 남겨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泮中雜詠’ 220수).
시의 3·4구는 ‘소동파’로 알려진 송나라 시인 소식(1037∼1101)이 시험에 낙방한 친구 동생을 위로한 시에서 가져온 표현이다(‘與潘三失解後飮酒’).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해 주지 않는 데 대한 시인의 속내가 드러난다. 후일 시인은 과거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科說’). ‘아워 바디’에서 자영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달리기를 하지만, 영화와 시 모두 시험에서 받은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그들에게서 우리 역시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잘못된 교육과 시험 제도로 상처 입은 이들에게 ‘굿 윌 헌팅’ 속 대사처럼 “네 잘못이 아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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