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뱉지 않았다. 상실이라는 현실이 차갑게 내 발밑을 받치고 있었다.”
2009년 19세 대학생이던 저자의 엄마가 돌아가신다. 난소암 4기 선고를 받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났다. 이따금 상실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급습해 오지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로 내세울 정도로 덤덤한 날이 더 많다. 슬픔이 흐려진 지금, 저자는 엄마의 투병 과정, 장례식 등 그간 마주하지 못한 상실의 순간을 정면으로 보기 시작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47세에 유명을 달리한 엄마 론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림으로 보여준다. 론다는 갈색 반달눈에 소가 혀로 핥은 듯 곧추선 앞머리, 주근깨가 있는 매끈한 팔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 구석구석 특징과 사소한 습관까지 그림과 글로 되살려낸다. 난소암 4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는 저자를 엄마는 되레 위로한다. 엄마 그림엔 ‘죽어가는 사람’, 본인 그림엔 ‘안 죽어가는 사람’이란 문구를 각각 넣은 뒤 “이 장면에서 뭐가 잘못됐을까?”라며 웃음을 유발한다. 가장 슬펐던 때를 돌아보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눈물샘만 자극하는 전개가 아니라는 점은 이 책의 매력이다.
암이 뇌와 폐까지 전이된 뒤 아기처럼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도 그린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과 저자의 복잡했던 머릿속, 조문객들이 던진 “넌 좀 어떠니?”라는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해 고민했던 기억, 가족이 각자의 방식으로 회복해가는 모습,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두 담았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한 책. 한 개인이 겪은 상실과 회복 과정을 만화로 보여주며 삶을 뒤흔든 슬픔에서도 얻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일찍 엄마를 잃은 이들과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말이 가장 위안이 되는지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슬픔엔 어떤 규칙도 없지만 무서운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누군가와 함께할 때 훨씬 덜 무섭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저자의 말이 무엇보다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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