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하늘과 교감하는 전남 고흥
용과 하늘을 만나는 미르마루길
‘용의 흔적’ 남아있는 용바위
기암괴석 팔영산의 영험한 기운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6월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창공으로 날아올라 국민적 주목을 끌었던 곳이다. 용처럼 불을 토하며 우주로 치솟은 누리호는 대기권 밖에다 ‘여의주’인 위성을 토해 놓는 데성공했다. 2027년까지 4차례의 추가 발사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나로우주센터의 발사 장면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고흥우주발사전망대다. 근처엔 용이 승천하는 형상인 용바위가 자리 잡고 있어 발사체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격렬한 화산 활동이 빚어낸 용바위는 우주와 교감할 수 있는 에너지가 형성된 터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높이 떠서(高) 흥하는(興)’ 고흥을 찾아 우주와 하늘을 느껴본다.》
○미르마루길에서 만난 ‘등용문’
고흥군 우미산 아래쪽의 해안길인 미르마루길. 용(미르)과 하늘(마루)을 테마로 조성한 산책로로, ‘용바위하늘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푸른 하늘처럼 펼쳐진 바다 경관을 즐기며 약 4km(도보로 약 1시간 15분 거리) 길을 걷다 보면 용바위 용굴 용두암 등 용과 관련된 형상들을 유난히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르마루길은 영남면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시작한다. 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에서 쏘아 올리는 우주 발사체 궤적은 아무데서나 잘 보이지 않는다. 직선거리로 바다 건너 15km가량 떨어진 이곳 전망대가 최고의 관람 포인트다. 바닷가 언덕 위에 로켓 발사대처럼 꾸며놓은 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꾸며져 있다.
전망대 전시관에 들어서면 강아지 동상이 눈에 띈다. ‘비극의 우주 개, 라이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라이카는 세계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나간 지구 생명체다. 1957년 11월 3일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우주공간으로 떠난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 라이카는 발사 몇 시간 만에 극심한 고열과 공포에 질려 죽었다. 인류의 우주 진출 욕심으로 인해 희생한 동물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전망대는 우주도서관과 우주체험 공간을 마련해 놓았고, 7층에는 360도로 돌아가는 회전카페가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나로우주센터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미르마루길 안내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잘 조성해 놓은 해안 산책로로 이어진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자인 사자바위와 길이 300m의 몽돌해변을 뒤로하고 계속 걷다 보면 두 개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하나는 해안절벽에 2개의 동굴이 형성된 용굴(길이 약 200m, 폭 7m)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고, 다른 하나는 80m 해안절벽 위에 철제 빔을 설치한 미르전망대다. 승천하려고 다투던 2마리 용 중 패배한 쪽을 상징하는 곳이 용굴이고, 승리한 쪽을 상징하는 곳이 미르전망대라고 한다.
현재 출입이 통제된 용굴은 싸움에서 진 용이 동굴로 들어간 후 나오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태풍이 올라오거나 해일이 닥치려 할 때 동굴에서 나는 소리를 “(분노한) 용이 운다”고 말한다. 너울성 파도가 용굴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라고 한다. 10km 거리까지 퍼져 나가는 용 울음 소리가 들리면 마을 사람들은 바로 재난에 대비했다고 한다.
동굴에 갇힌 용과 달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곳이 바로 미르전망대다. 막상 용이 승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발아래 투명유리를 통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함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 아래는 유명 낚시 포인트여서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찾아온다. 잘 조성된 덱길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용바위와 용두암(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 해변)으로 간다. 이 일대는 바닷가에서 120m 높이로 우뚝 선 바위산과 함께 화산활동이 빚어낸 기암괴석, 크고 작은 돌개구멍, 넓은 반석층이 제주도 용두암 못지않은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먼저 용바위에는 당연히 용의 ‘흔적’이 있다. 용바위 절벽 중앙 부위에는 깊고도 굵은 선 모양으로 골이 파여 있는 곳이 있다.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자국이라고 한다. 절벽 위에는 위풍당당하게 여의주를 들고 있는 용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가 “팔영산 동쪽 바닷가 바위에는 용이 서려 있던 자취가 남아 있고, 바위 아래로는 마치 깎아 만든 듯한 평평하고도 넓은 암반층이 있어 1000명도 앉을 수 있다”고 묘사한 곳이 바로 여기다. 용바위에서 70m 옆에 있는 용두암 역시 용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용바위에서 승천한 용의 머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이 빚어놓았다는 바위인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용바위 일대는 나로우주센터와 더불어 고흥의 명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화산 활동 지형, 단체 혹은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활용하기 좋은 넓은 반석 지대, 바닷고기가 풍성한 낚시 포인트 등 다양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적으로도 용바위에는 훌륭한 기운이 배어 있다. 예부터 이곳은 등용문(登龍門·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크게 출세함)을 기원하는 이들이 즐겨 찾았다. 지금도 입시철이면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명당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팔영산에서 만난 주역 8괘
미르마루길의 용 설화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내력을 가진 곳이 고흥 팔영산(八靈山)이다. 기이한 자태의 봉우리 8개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산이다. 공룡의 등 돌기처럼 불거져 나온 8개 봉우리 형상은 일찌감치 중국까지 알려졌던 모양이다. 중국 위(魏)나라 왕이 세숫대야에 비친 8개 봉우리에 감탄해 수소문한 끝에 팔영산을 찾아내고는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팔영산은 조선 때 봉수대가 설치됐었고, 구한말에는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으며, 신흥 종교의 요람이기도 했다.
팔영산은 산세가 수려해 암릉 산행지로 유명하거니와, 산자락 곳곳에 명소들을 품고 있다. 먼저 북측 산자락에 자리 잡은 능가사는 팔영산의 8개 봉우리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절집 뒤로 펼쳐지는 팔영산 봉우리를 바라보다 보면 절로 ‘멍을 때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절집 뒤쪽(남쪽)이 팔영산이다 보니 대웅전 등 법당이 북향(北向)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한때 호남 4대 사찰에 들 만큼 번창했었다는 능가사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동종(범종) 등이 유명하다. 특히 1698년(숙종 24년)에 주조된 범종은 ‘주상전하 만만세’라는 명문과 함께 주종장(鑄鐘匠) 김애립과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능가사에는 팔영산의 8(八)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주역 8괘(八卦)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범종에는 불법(佛法)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역 8괘(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가 새겨져 있고, 300여 년 전의 작품인 능가사사적비(전남 유형문화재)에도 8괘가 보인다. 우주만물 혹은 천지팔방을 의미하는 8괘가 왜 범종 등에 새겨졌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8괘의 흔적은 팔영산 서쪽 자락의 편백 치유의 숲에서도 발견된다. 30∼40년생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팔영산과 편백숲에서 나오는 8가지 기운(木, 金, 土, 風, 光, 藝, 感, 學)으로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힐링 명소로 소개돼 있다. 이곳에서는 이색적인 숲속 경관 체험과 함께 여러 치유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특히 ‘세러피센터’에서는 고흥의 대표적 특산물인 유자와 석류 그리고 편백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수에 몸을 담그고 쉴 수 있는 ‘수(水) 치유’가 인상적이다. 지역 특산품의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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