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한파가 찾아온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학생 5명이 2층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미국과 체코, 홍콩, 태국,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이다.
이날 강의는 ‘한문연수 펠로십’ 심화반 과정. 9월부터 시작된 강의는 한문학자인 김지현 박사(49)가 한다.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서 ‘무엇을 지언(知言·말을 안다)이라 할 수 있느냐’는 제자 공손추의 질문에 맹자가 답하는 대목 원문을 빔프로젝트로 띄운 김 박사는 대뜸 화이트보드에 산 하나를 그렸다.
“산의 한쪽 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다른 쪽은 가파르죠? 가파른 쪽에서 산을 바라본 사람은 산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까요?”
한쪽 면만 보고 하는 ‘피사(詖辭·공정하지 않고 치우친 말)’는 가려진 부분이 있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말이 유창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외국인 한국학 전공자를 위한 고전 강의는 2019년 시작됐다. 독일 보쿰대의 마리온 에거트 교수 등 해외 한국학자들이 “차세대 한국학자를 위해 한문 교육을 지원해 달라”고 건의했고 연구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회차 당 4개월씩 진행하는 펠로십은 1년에 1, 2회씩 열린다. 올 하반기 6회차를 맞았다. 학생들에게는 숙식과 월 100만 원의 체제비도 제공한다. 동양 고전을 비롯해 실학자 유득공의 한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나 추사 김정희의 문집 ‘완당전집’ 등 조선 문헌도 가르친다. 한국학을 연구하며 고문헌을 읽으려면 한문 독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체코 국립찰스대 한국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코치노바 카테리나 씨는 “현재 조선 재난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데 한문 문장의 구조나 글자를 익히니 조선왕조실록도 직접 해석해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으로 접한 고문서는 번역된 것조차 이해가 되질 않았다”며 “체코에서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고민을 한국에 와서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은 “해외 대학에서 한국식 한문을 가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펠로십을 계기로 한문 교육을 처음 접했다는 외국인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직접 현지 조사를 하는 학생도 있다. 영국 런던 소아스대 한국학과 박사 과정인 홍콩 출신 찬윙샨 씨는 주말마다 경북 안동 등에 가서 조선 ‘열녀비‘를 연구한다. 열녀비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문을 읽으려면 한문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해요. 펠로십을 계기로 논문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할 수 있어 신납니다. 청강하고 있는 한국학 대학원 고문헌관리학 수업도 큰 도움이 되고요. 내실 있는 한국학 연구로 꼭 보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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