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풍토(風土)를 살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중시했던 아버지의 뜻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
6일 오전 제주시 한경면 저지예술마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저지오름(닥몰오름)이 가까운 이곳에 재일교포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고(故) 이타미준(유동룡·1937~2011)의 건축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타미준뮤지엄’이 이날 개관했다.
뮤지엄은 이타미준이 생전에 사랑한 화산섬 제주의 야생 자연을 그대로 품었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흔적이 드러난 암반 위에 세워졌다. 여기에 곶자왈(자연림)과 바람, 내리쬐는 햇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타미준의 장녀인 유 대표는 “흙으로 뒤덮인 땅이었는데 건물 터를 파다보니 빌레(용암으로 형성된 평평한 암반)가 드러났다”며 “이를 고스란히 살리려 건물 배치와 설계를 전면 수정했다”고 말했다.
연면적 675㎡(약 200평), 지상 2층 규모의 뮤지엄은 목재로 장식한 타원형 기둥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완만한 지붕을 덮었다. 제주 지형을 닮은 건축은 자연과 조응하던 이타미준의 철학이 반영됐다. 유 대표는 “타원형 기둥은 나무 원목의 결을 살살려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상쇄시켰다”고 했다.
뮤지엄 내부는 온전히 ‘먹의 공간’으로 꾸몄다. 노출된 콘크리트나 금속, 목재 등 소재는 다르지만 공간 전체가 먹색을 띄었다. 이타미준이 사랑한 ‘오래된 종이의 향’을 직접 제작해 곳곳에서 그 향을 맡을 수 있다. 이곳에 흐르는 음악은 이타미준처럼 경계인의 삶을 산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62)이 큐레이션을 맡았다. 유 대표는 “먹색은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던 이타미준의 시그니처 색깔“이라며 “시각과 청각, 후각에 통일성을 부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상반된 재료의 믹스매치를 통해 주연으로 쓰고자하는 재료의 본질을 부각시키셨어요. 물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아 아버지가 서귀포시 안덕면에 설계한 수(水)·풍(風)·석(石) 뮤지엄에 가보셨나요. 석 뮤지엄은 돌이 단 3개 뿐이에요. 돌을 주연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죠.”
유 대표는 2020년 예술 분야 사업 공모를 통해 도유지를 매입해 뮤지엄을 설계했다. 뮤지엄 설립은 2011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이타미준이 남긴 유언를 따른 것. 유 대표는 “유언도 지키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컸기에 뮤지엄 설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뮤지엄 2층에선 개관 특별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준’이 열리고 있다. 자연이 건네는 소리에 귀기울인 이타미준의 작품 세계를 사진과 드로잉 스케치 등으로 소개한다. 1970년대 일본 모노파(物派·물질 및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한 사조)의 영향을 받은 그의 건축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타미준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용했던 작업실도 재현했다. 조선 백자와 ‘토(土)’ 자가 적힌 액자 등이 전시돼 온기와 본질을 추구한 그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1층 라이브러리에 있는 1971년 이타미준의 첫 작품 ‘어머니의 집’ 모형도가 인상적이다. 그가 당시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일본 시즈오카현에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람의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티라운지와 아트숍 ‘이타미준 에디션’도 눈길을 끈다. 뮤지엄 측은 “금속공예가 심현석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타미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을 판매한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