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로 주목받았던 일본 나가사키 현 하시마섬(군함도)은 알려진대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시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역사를 반영하라’고 했지만, 일본 측은 억지 주장을 펴며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올해 9월 새로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있다. 니가타 현의 사도(佐渡)광산을 ‘금을 중심으로 한 사도광산 유사군’으로 추진 중인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시기를 에도시대인 1867년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사도광산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은 최소 1519명으로 추정된다. 재단 한일문제연구소의 양지혜 연구위원은 “엄연히 강제동원 기록이 남아있는데, 아예 이 시기를 제외해 논란이나 지적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일본 문화청이 관리하는 ‘세계유산잠정일람표’를 살펴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 후보군으로 27개 유산이 등록돼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잠정 후보군에는 도치기 현의 아시오광산과 도야마 현의 다테야마·구로베 댐이 포함돼있다. 모두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버려가며 일했던 곳이다.
아시오광산은 일본 내에서도 광산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죽음의 땅’이란 오명이 붙어 있다. 과거엔 동아시아 최대 구리 산출지로 각광받았지만, 압사나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조선인의 희생도 엄청났다. 1990년 일본 후생성이 발표한 ‘조선인노무자에 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0년 8월경부터 1945년 일본 패망까지 조선인 노동자 2416명”이 강제로 동원됐다.
다테야마·구로베 댐은 높이가 186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 1936~1940년 공사가 실시된 구로베 제3발전소에서 약 10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의 조건 연구위원은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준해 산사태 등 재해로 사망자가 많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문화청 세계유산잠정일람표에 올라와있는 2곳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확인한 결과,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일본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이미 버젓이 아시오광산을 차기 세계유산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센터를 찾아 현안 실태조사를 벌인 양 연구위원은 “이미 등재를 추진하는 시설을 홍보하고 있어 아시오광산 등이 제2, 제3의 사도광산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특히 일본이 군함도와 관련해 여전히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 우려는 더욱 커진다.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3차 이행경과보고서에서도 강제동원 명시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근대산업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려드는 만큼 우리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독일의 졸페라린 탄광지대처럼 강제동원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고 관련자료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근대산업유산을 이용해 지역 발전을 꾀하는 점은 배울만하지만, 관련 역사를 은폐하는 건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며 ”일본의 은폐 시도를 제대로 반박하고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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