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을 내놔도 부끄러운데 멘토링한 작품을 내놓으려니까… 별로라는 사람이 속출하면 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 거 같아 심히 우려됩니다. 부모 같은 마음이죠.(읏음)“
1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초희 감독(47)은 단편영화 ‘몬티 쥬베이의 삶과 죽음(이하 몬티)’의 일반 상영관 공개를 앞두고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후배인 김정민 감독(32)이 연출한 이 단편은 17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공개된다. 지난해 제작된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등 영화제 외에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건 처음. 선배 김초희 감독의 단편 ‘우라까이 하루끼’도 이날 함께 상영된다. 두 사람은 함께 관객과의 대화도 연다.
김초희 감독은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년)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 상을 휩쓸었다. 주연배우 강말금 역시 백상예술대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을 독차지하며, 그는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김초희 감독은 CJ문화재단이 2010년부터 진행한 단편영화 제작 지원사업 ‘스토리업’을 통해 지난해 김정민 감독을 만나 ‘몬티’ 시나리오 수정과 연출 과정 전반을 멘토링하는 등 후배 육성에 나섰다.
멘토링을 거쳐 만든 이 영화는 CJ문화재단이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단편영화 상영회 ‘스토리업 쇼츠’를 통해 공개된다. CJ문화재단은 지난달 ‘2022 충무로 영화제-감독주간’에서 ‘스토리업 쇼츠 아시아’를 열어 우수 단편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등 단편영화 상영 기회를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초희 감독은 김정민 감독의 시나리오를 멘토링 대상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단편에서까지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건 싫었다“며 “단편은 감독이 색깔이 분명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민이 시나리오가 정말 특이했다”고 했다.
이어 “요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멘토링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며 “나도 1990년대생 감독들에게 자극을 받았고 배우는 게 많았다”고 했다.
‘몬티’는 블랙코미디로 전업주부 완수(봉태규)가 상처에 바람을 불어주는 기구 ‘호’를 발명해 사업을 하겠다는 부인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부인은 하와이 출신의 정체 모를 남성 ‘몬티 쥬베이’와 사업을 한다며 일본으로 가는데 사업은 진척이 없고 뭔가 수상하다.
김정민 감독은 30분짜리 단편을 22개 챕터로 쪼개 단편 속의 초단편처럼 구성했다. 완수가 돈을 빌리러 찾아간 사채업자와 일본 사업 전문가, 장난감 제조업자 등 서로 크게 관련 없는 주인공들을 차례대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하나씩 쌓아가는 형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며 몰입을 이끈다.
이날 함께 인터뷰한 김정민 감독은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흔히 영화를 만들 때 이야기하지 말고 보여주라고 하는데 주인공들이 이야기하는 것 위주로 보여주며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김초희 감독님이 멘토링을 해주신다고 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며 “감독님이 특히 투박하고 거친 시나리오를 현실의 틀로 당겨오는 역할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나리오 초안에는 욕설과 비속어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김초희 감독이 “꼭 필요한 것만 남겨놓자”고 조언해 상당수 빠졌다. 김초희 감독은 이 영화에 배우 강말금의 출연을 주선하는 등 크고 작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민 감독은 “전에도 단편영화를 만들었지만 멘토링을 받아 만든 이번 작품을 확실히 다르다”며 “심리학을 전공해 영화계 동료가 배우 외엔 없었고 주로 혼자 작업을 했는데 처음으로 객관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내 세계에 몰입하던 것에서 벗어나 영화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초희 감독은 이날도 후배에게 부산 사투리로 “이 영화는 분절이 많아서 감정이 쌓이기 어려우니 내레이션을 바꿔서라도 감정을 쌓아보라고 내가 말했나 안 했나. 내 단디(제대로) 하라고 분명히 말했다”라고 말하는 등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멘토로서 정민이가 한국 영화의 미래가 되길 바랍니다. 이 친구는 확실히 독특한 색깔이 있거든요. 정민이 색깔을 잘 알아보는 투자자를 만나서 색깔도 잘 유지하고 독보적인 감독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를 좀 끌어주면 더 좋고요. 하하.”(김초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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