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당신이 있는 곳 창밖엔 어떤 풍경이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7일 03시 00분


◇당신의 창밖은 안녕한가요/바르바라 뒤리오 엮음/이주민 옮김/400쪽·4만2000원·클
SNS에 창밖 찍어 공유한 저자… 한 달만에 200만 명 넘게 동참
팬데믹으로 변해버린 일상 포착…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 찾게 돼

미국인 테리 슈워츠는 장인과 장모가 머무는 캔자스주 양로원 앞에 두 사람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설치했다. 당시 양로원은 팬데믹으로 출입이 봉쇄됐고, 전화를 받은 장인과 장모는 창밖으로 이 풍경을 보며 기뻐했다. 클 제공
미국인 테리 슈워츠는 장인과 장모가 머무는 캔자스주 양로원 앞에 두 사람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설치했다. 당시 양로원은 팬데믹으로 출입이 봉쇄됐고, 전화를 받은 장인과 장모는 창밖으로 이 풍경을 보며 기뻐했다. 클 제공
“우리는 몇 주가 될지 모를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나뿐인 풍경이 보이는 집에서 격리될 텐데 지구 반대편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심했던 2020년, 벨기에 그래픽디자이너 겸 사진작가인 엮은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해 3월 22일 페이스북에 그룹 ‘나의 창밖 풍경’을 개설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보이는 저녁 풍경 사진을 올렸다. 약 한 달 뒤, 이 그룹엔 무려 2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100여 개 지역에서 올린 약 20만 개의 풍경 사진이 한데 모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슈웽크스빌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 질 모리는 창문에 수업 시간표와 학생들에 대한 메모를 붙여 놓았다. 팬데믹 기간에 화상수업을 해야 했던 그는 “영상으로라도 귀여운 아이들 얼굴과 앞니 빠진 미소를 보는 건 하루의 햇살과도 같았다”고 했다. 클 제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슈웽크스빌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 질 모리는 창문에 수업 시간표와 학생들에 대한 메모를 붙여 놓았다. 팬데믹 기간에 화상수업을 해야 했던 그는 “영상으로라도 귀여운 아이들 얼굴과 앞니 빠진 미소를 보는 건 하루의 햇살과도 같았다”고 했다. 클 제공
‘당신의 창밖은 안녕한가요’는 이들 게시물 가운데 258점을 골라 모은 사진집이다. 언뜻 보면 딱히 특별하지 않은 바깥 풍경을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함께 겪은 지구인이라면 이 사진들이 마냥 단순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불빛을 밝혀 놓은 고층빌딩, 인간이 보이지 않자 집 근처까지 찾아온 야생동물처럼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스티븐 J 휫필드가 찍은 이집트 카이로 풍경. 그는 팬데믹을 겪으며 2008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과거를 떠올렸다. “행복해지려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빼앗긴다”는 느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로 근무하며 “세상엔 감사할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했다. 클 제공
스티븐 J 휫필드가 찍은 이집트 카이로 풍경. 그는 팬데믹을 겪으며 2008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과거를 떠올렸다. “행복해지려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빼앗긴다”는 느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로 근무하며 “세상엔 감사할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했다. 클 제공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누군가는 사진집을 “역사적인 한 시기에 대한 순간 포착”이라 불렀다.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팬데믹은 그간 쉽게 지나쳐 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어떤 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앞집을 찍으며 항암치료를 받은 이웃 아주머니의 건강을 빌었다. 또 다른 이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던 거리가 공허할 정도로 텅 빈 걸 보며 가끔씩 들려오는 짧은 소음이 위안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다이앤 주엑이 찍은 미국 워싱턴 풍경. 주엑은 팬데믹 기간에 세상을 떠난 반려견 홀리를 집 마당에 묻었는데, 홀리의 무덤에 사슴과 토끼 등 야생동물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는 “집에 머물게 돼 홀리와 마지막 소중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클 제공
다이앤 주엑이 찍은 미국 워싱턴 풍경. 주엑은 팬데믹 기간에 세상을 떠난 반려견 홀리를 집 마당에 묻었는데, 홀리의 무덤에 사슴과 토끼 등 야생동물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는 “집에 머물게 돼 홀리와 마지막 소중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클 제공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변해 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사진들처럼 그 변화는 또 다른 의미를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당신의 창밖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주고, 같은 것을 아주 다르게 보는 시각을 공유한다”는 엮은이의 말은 참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

#당신의 창밖은 안녕한가요#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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