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1958년 한국문화재 거래장부
소장 미국인이 한국에 기증
“문화재 유출 경로 파악에 큰 도움”
“1930년대부터 20년간 한국 문화재를 거래한 외국인 명단을 기록한 장부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연구 등에 필요하다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1958년부터 미군 군무원으로 30여 년간 한국에 살았던 로버트 마티엘리 씨(97)는 올해 초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연락했다.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그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재단 연구원들을 자택으로 초대했다. 자신이 그동안 모은 한국 문화재 1946점을 조사 연구하도록 한 것이다.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던 6월. 재단 실태조사부의 김륜용 선임(36)이 마티엘리 씨의 자택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 마티엘리 씨는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것인데 보여줄 게 있다”며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1936∼1958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영업했던 ‘사무엘 리 고미술상’ 고객 장부로, 당시 거래된 우리 문화재 품목과 거래자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보자마자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직감했어요.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이 언제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마티엘리 씨에게 ‘국외 문화재를 추적할 중요한 사료’라고 했더니 곧장 한국에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김 선임)
재단은 이 고객 장부를 포함해 마티엘리 씨가 소장하던 당대 문화재 관련 사료 60점을 기증받았다고 19일 밝혔다. 고미술상을 운영한 사무엘 리가 그에게 남긴 장부에는 670건이 넘는 한국 문화재 거래 목록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김 선임은 “거래 장부를 연구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유출 경로를 파악해 연구 및 환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엘 리 장부에는 눈에 띄는 인물도 있다.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인 사회복지사업가 헬렌 켈러(1880∼1968)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7월 강연 및 연설을 위해 방한했던 그는 고미술상에서 조선시대 서안(書案·책을 읽는 좌상)을 구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 문화재에 애정이 깊은 마티엘리 씨는 1725년 제작된 조선 불화 ‘오불도’를 2016년 국내에 반환하기도 했다. 1970년 서울 종로구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작품으로, 2014년 미 포틀랜드박물관에 기탁하는 과정에서 전남 순천 송광사 소유였다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티엘리 씨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란 소식을 듣고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돼 다행이다”라며 대한불교조계종에 이를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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