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끝난 보복관람… 신년 극장가도 찬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0일 13시 56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매점 앞 키오스크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먹을 팝콘 등 간식을 주문하는 모습. CGV 제공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매점 앞 키오스크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먹을 팝콘 등 간식을 주문하는 모습. CGV 제공
올해 국내 극장가 분위기는 ‘짧고 굵게 끝나버린 보복 관람 효과’, ‘길고 긴 보릿고개’로 요약된다.

할리우드 대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한국 영화 ‘범죄도시2’가 상영관 내 취식 제한이 해제된 직후인 5월 4일과 18일 잇달아 개봉하면서 극장가는 팬데믹 2년여 간의 절망을 딛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듯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개봉 전 사전 예매량만 100만 장을 넘기면서 극장가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뒤이어 개봉한 ‘범죄도시2’가 팬데믹 이후 첫 1000만 영화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예상 밖으로 ‘보복 관람’ 효과는 반짝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극장가 최대 대목인 여름 시장을 겨냥해 개봉한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헌트’ ‘외계+인’ 등 한국 영화 ‘빅4’의 성적은 예상을 밑돌았다다. ‘1000만 예약 영화’로 불린 ‘한산: 용의 출현’이 가장 선방했지만, 756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한재림 최동훈 등 국내 대표 스타 감독이 연출한 ‘비상선언’과 ‘외계+인’은 각각 200만 명, 154만 명에 그치면서 흥행에 참패했다. 스타 감독 마케팅은 물론 송강호 이병헌 등 천만 배우를 내세운 마케팅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 평일 일반관 기준 1만4000원으로 폭등한 관람료에 올해 한국 관객들은 역대 가장 냉정한 관객의 모습을 보였다.

‘빅4’ 대전이 극장가 판을 키워 분위기를 띄우기는커녕 파이 나눠먹기식의 출혈 경쟁으로 마무리되면서 가을 극장가는 한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를 표방한 염정아 류승룡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117만 명을 모으는 데 그치면서 손익분기점 220만 명을 한참 밑돌았다. 코미디 여왕 라미란을 내세운 ‘정직한 후보2’을 비롯해 ‘압꾸정’ ‘동감’ ‘데시벨’ ‘리멤버’ ‘자백’ 등이 줄줄이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냉정함만 확인한 채 퇴장했다.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가 속출하면서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지난달 23일 개봉해 홀로 독주하며 19일까지 292만 명을 모은 ‘올빼미’를 비롯해 ‘육사오’, ‘마녀2’, ‘헌트’, ‘한산: 용의 출현’, ‘공조2: 인터내셔날’ ‘헤어질 결심’ ‘범죄도시2’ 등 8편. 팬데믹 이전인 2018년 16편, 2019년 18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극장가가 얼마나 심각한 보릿고개를 넘었는지 한 눈에 보인다.

외화 역시 마찬가지. ‘탑건: 매버릭’(877만 명)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 명)을 제외하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더 배트맨’ ‘블랙아담’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줄줄이 한국 극장가의 쓴맛을 봤다.

올해 극장 관객 수는 19일 현재까지 1억566만 명. 관객을 쓸어 모으고 있는 ‘아바타: 물의 길’의 공세가 이어지고 천만 감독 윤제균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 21일 개봉한 것을 계기로 연말 관객이 상당수 더해지더라도 2013년부터 시작해 2019년까지 줄곧 관객 2억 명을 넘긴 영광을 되찾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극장가가 팬데믹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 데 실패한 데다 전체 파이가 작아진 사실만 확인하면서 신년 한국 영화의 극장 개봉은 한층 더 신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월 18일 개봉하는 영화 ‘유령’. CJ ENM 제공


현재 내년 개봉이 확정된 한국 영화 대작은 ‘한산: 용의 출현’ 후속편 ‘노량: 죽음의 바다’,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피랍’, 설경구 박해수 주연의 ‘유령’, 류승완 감독의 ‘밀수’ 등이다. 영화업계는 극장 큰 스크린에 걸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 대작 등에 한해 내년 라인업을 우선 발표하는 분위기다. 내부에서 개봉할 영화를 이미 확정했더라도 이를 공개하는 것에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도 읽힌다.

내년엔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미션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 등 전 세계를 휩쓴 대작 속편 개봉이 일찌감치 확정돼있어 이를 피해 개봉하는 것도 숙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도 내년 7월 개봉한다. 영화업계는 할리우드 대작을 피해야 하는데다 올 여름 출혈경쟁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한국 영화 대작과의 정면 대결도 피해야 하는 등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내년 6월 개봉을 확정한 할리우드 대작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줄어든 관객 수가 올해는 변수였다면 내년엔 아예 상수로 놓고 개봉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개봉일 결정에 한층 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극장에 걸었을 때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확실하다는 내부 판단이 없는 영화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 판매에 OTT로 직행하는 사례가 내년부터는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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