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명승 지정 별서정원에 대한 역사성 검토를 마쳤다”며 “이 과정에서 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새롭게 밝혀냈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예천 선몽대 일원 등 11곳에 이어 올해 담양 명옥헌 원림 등 9개소 정원의 만든 이와 소유자, 정원의 변화과정, 정원 명칭의 유래 등을 고증했다.
그 결과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 광주 환벽당 원림 3곳에 대해 정원 조성 시기와 초기 형태를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중종 21년(1526) 충재 권벌(1478~1548)이 바위 위에 지은 청암정과 그의 아들인 청암 권동보(1518~1592)가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석천계곡에 지은 석천정으로 이뤄졌다.
청암정과 석천계곡이 있는 유곡마을은 1380년 권벌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토 과정에서 이곳은 권벌이 중종 15년(1520) 터를 잡은 곳임이 확인됐다.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은 화림재 전시서가 은거하며 억새로 만든 정자를 1872년 재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시서가 은거했던 곳 서쪽에 그의 후손인 전재택 등이 고종 9년(1872) 새로 세운 정자임이 밝혀졌다.
광주 환벽당 원림 일원은 사촌 김윤제(1501∼1572)가 노년에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환벽당은 그의 부친 김후(金珝)의 정자를 김윤제가 중수해 건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원은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화재나 목부재의 부식 등으로 중수나 중건 등이 불가피하다. 문화재청은 “정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형태 뿐만 아니라 이후 정원의 형태나 위치가 변경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정원의 역사성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형태 뿐만 아니라 중수나 중건이 새로 확인된 사례도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과 안동 만휴정 원림, 밀양 월연대 일원, 화순 임대정 원림 4곳이다.
담양 명옥헌 원림을 만든 이는 조선 중기 명곡 오희도(1583~1623)와 그의 아들 오이정(1619~1655)으로 혼용돼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검토에서 오희도가 은거했던 망재(忘齋)라는 이름의 서재 인근에 오이정이 조성한 별서임이 확인됐다. 또 영조 25년(1748) 오이정의 손자 오대경(1689∼1761)이 현감으로 재직하며 퇴락한 명옥헌을 중수한 사실이 확인됐다.
안동 만휴정 원림은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은거하며 경영한 쌍청헌 터에 있는 정자로, 영조 46년(1770) 동도 김덕일(1734∼1794)이 중수한 사실이 밝혀졌다.
밀양 월연대 일원은 조선 중종 때 문신 월연 이태(1483∼1536)가 관직에서 물러나 쌍경당과 월연대를 조성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쌍경당을 숙종 23년(1697)에 중수하고 고종 3년(1866) 이태의 11대손 이종술이 월연대를 중수한 사실도 확인됐다.
화순 임대정 원림은 16세기 후반 고반 남언기가 조성한 고반원의 수륜대 옛 터에 철종 13년(1862) 사애 민주현(1808∼1882)이 건립한 정자다.
임대정은 본래 풀이나 갈대 따위로 지붕을 인 정자인 한 칸의 초정(草亭)으로 지어졌으며, 시간이 지나 허물어졌다. 1922년 민주현의 손자 민대호(1860~1932) 등이 정자를 중수하면서 2칸을 더 짓고 기와를 올려 현 모습이 완성됐다.
거창 용암정 일원은 중수 외에 별서정원의 명승적 가치를 담은 기록도 추가로 확인됐다.
용암정은 순조 원년(1801) 용암) 임석형(1751∼1816)이 조부와 부친을 따라 노닐던 용암 위에 세운 정자로, 고종 원년(1864) 증손 임수학이 중수했다.
이 외에 강진 백운동 원림은 이담로(1627~?)가 정원을 만든 시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번 고증 과정에서 김창집(1648~1722)의 옛 시를 통해 1678년 이전 만들어진 정원임이 확인됐다. 이담로의 6대손 이시헌(1803∼1860)이 정약용, 초의선사와 교류하며 차를 만들고 즐긴 기록 등을 통해 국내 차 문화 산실로서 가치가 더해졌다.
문화재청은 “이번 명승 별서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 검토 결과에 따라 고시문과 국가문화유산포털에 게재한 내용을 정정할 계획”이라며 “향후 지정되는 명승 및 별서정원에 대해서도 고문헌 고증 등 역사성 검토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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