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라이너 감독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년)에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사랑을 깨닫게 된 건 영국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지는 새해맞이 파티에서였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은 이처럼 사람을 각성시킨다. 조선시대 서거정(1420∼1488)도 송구영신(送舊迎新) 잔치에서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음력 섣달그믐 저녁부터 새해 첫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한 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해지킴’의 행사다. 우리 민속엔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해서 애써 졸음을 참으며 새해를 맞이했다. 시인도 묵은해 마지막 밤을 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적었다.
중국에도 한 해 마지막 날 잔치를 베풀고 등을 밝히며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다. 마지막 구절은 송나라 때 오중(吳中)의 소년들이 그믐날 거리를 돌아다니며 “네 어리석음을 팔아라, 네 못남을 팔아라(賣汝癡, 賣汝獃)”라고 외친 데서 온 말이다. 시인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노고를 내세우기보다 스스로 성찰하며 지난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한시사에서 비유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소식(1037∼1101)도 같은 제목의 시에서 세밑의 상황을 뱀에 빗대 표현한 바 있다.(‘詩人玉屑’) 아무리 묶어놓아도 결국 빠져나와 구렁 속으로 들어가고야 마는 뱀처럼 세월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해지킴도 마찬가지다. 해 보냄이 아쉬워 눈을 부릅떠 보아도 기어코 시간은 흘러 새해가 찾아온다.
집 없는 유랑인을 다룬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2020년)에선 해바뀜이 두 번 나온다. 남편과 직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주인공 펀은 상실과 절망 속에서 두 번의 새해를 맞는다. 첫 번째 해바뀜은 절망 속에서 고독할 뿐이었지만, 두 번째 해바뀜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해피 뉴이어”를 먼저 외칠 정도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 한다.
우리 역시 각각의 처지에서 해지킴과 해맞이를 한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새해를 맞이할 땐 희망을 꿈꾼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잘 맞이하려면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지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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