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인 행성의 와인파티… 광야의 코끼리, 나의 마음 밟고 지나가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1일 03시 00분


‘관광 오아시스’ 열린 사우디
‘비전 2030’서 시작된 개방 물결
모래암석이 빚은 신비의 협곡
놀라움 가득한 사막의 풍경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고대도시 알울라에 있는 ‘코끼리 바위(Elephant Rock)’. 해 질 녘 노을빛에 바위 색깔은 
황금색에서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변해 간다.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 카페에는 차를 마시며 코끼리 바위의 노을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횃불이 켜지고, 밤하늘 별이 쏟아질 때까지 사막의 고요함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고대도시 알울라에 있는 ‘코끼리 바위(Elephant Rock)’. 해 질 녘 노을빛에 바위 색깔은 황금색에서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변해 간다.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 카페에는 차를 마시며 코끼리 바위의 노을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횃불이 켜지고, 밤하늘 별이 쏟아질 때까지 사막의 고요함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뜨거운 모래사막과 낙타밖에 없을까? 1970∼80년대 ‘중동 붐’ 당시 한국의 건설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던 곳. 석유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대국을 꿈꾸며 글로벌 관광객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MBS)이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국가 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핵심도 관광산업이다.

○사막에 비를 몰고 온 손님
이달 10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하지 못하고 몇 바퀴 선회를 했다. 창밖을 보니 활주로에 빗방울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우디에서 소낙비를 맞게 될 줄이야! 이날 오전 내내 내린 비로 리야드 시내는 물바다가 돼 버렸다. 강수량은 불과 10∼20mm에 불과했는데도 배수시설이 부족한 사우디에서는 곳곳에서 맨홀이 역류하고 도로가 끊겼다. 현지 여행사 직원 지야드 알말키 씨(25)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산을 써봤다”며 “여러분들은 귀한 비를 몰고 온 손님”이라며 싱글벙글했다.

사우디는 요즘 겨울이다. 해발 700m의 도시 리야드에서 비가 온 것도 신기한데, 날씨도 쌀쌀했다. 영상 12도. 사막 날씨를 예상하고 반팔만 가져왔는데, 추웠다. 자세히 보니 리야드 사람들은 패딩 점퍼나 양털 가죽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우디는 남한 면적의 20배 정도로 큰 나라다. 해변이나 사막도 있지만, 대추야자 숲이 정글처럼 우거진 오아시스 도시도 많다. 북쪽의 요르단·이라크와 가까운 타부크 지방과 남쪽 예멘 인근 아시르 고원지대에는 겨울에 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사우디는 타부크주 네옴시티 인근에 건설 중인 트로제나 스키장에서 2029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사우디에서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거리에 히잡을 쓰지 않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걸어다니는 여성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란에서 히잡 반대 시위로 수많은 여성이 체포·구금되고 있는데,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가 있는 사우디인데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2019년 여성들에게 운전면허가 허용된 이후로 여성들은 취업과 외출, 복장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고 개인의 선택에 맡겨졌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빈살만 왕세자가 2016년 발표한 ‘비전 2030’에서 시작됐다. 첫 번째 중동 특수가 건설 붐이었다면, 빈살만이 이끄는 ‘제2의 중동 특수’는 문화, 금융, 신재생 에너지로 넓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광이다. 사우디 정부는 2019년부터 온라인으로도 전자비자를 발급했고, 이슬람 신자들에게만 허용됐던 성지 메디나 방문을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처음 개방했다. 올 9월부터는 인천∼리야드∼지다 직항 항공노선도 뚫려 한국에서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사막의 고대도시 알울라
요즘 사우디에서 유럽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문명 도시 알울라(AlUla)다. 리야드에서 1100km 떨어진 알울라는 카라반 무역이 융성하던 고대 다단 왕국(기원전 6세기∼기원전 1세기)의 수도였으며,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왕국(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중요 도시였다.

약 5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砂巖) 산맥이 풍화와 침식을 거쳐 만들어진 알울라의 독특한 자연 풍경은 마치 외계의 행성처럼 보인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대협곡, 버섯 모양의 신기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는 튀르키예(터키)의 카파도키아,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중국의 장자제(張家界)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알울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코끼리 바위’. 알울라 코끼리 바위는 해 질 녘 노을빛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간다.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에는 구덩이를 파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해가 지고 횃불이 들어오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위의 색을 감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하다 보면 사막의 고요함 속에 빠져든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길 기대하는 순간이다.

헤그라 지역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 최대 무덤 건축물인 ‘카스르 알파리드’.
헤그라 지역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 최대 무덤 건축물인 ‘카스르 알파리드’.
자연이 만들어 낸 수백만 개의 기암괴석 중에는 나바테아 문명인들이 조각해놓은 건축물도 발견된다. 역사문명 지구인 헤그라에는 바위 전면부(파사드)를 깎아서 부조처럼 건물의 입구를 표현해 놓은 110개의 건축물이 있다. ‘카스르 알파리드(Qasr AlFarid)’는 기둥이 4개나 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묻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무덤 입구 위에 있는 계단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헤그라의 바위 협곡에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수천 년 전의 문자와 암각화도 있다. ‘자발 이크마’ 계곡의 아람어, 타무드어, 다단어, 나바테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등 온갖 고대 언어로 쓰인 명문으로 가득하다.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 상인, 순례자들이 남겨놓은 메시지다. 그래서 이곳을 ‘오픈 뮤지엄’ 또는 ‘고대의 트위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 학자 뮈라테 나탈리 교수는 “바위에 쓰인 수많은 고대 언어는 아랍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나바테아 왕국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네모난 홀인 ‘알디완’.
나바테아 왕국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네모난 홀인 ‘알디완’.
또 다른 사암 계곡인 ‘자발 이틀립’에는 시원한 천연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협곡이 있다. 나바테아 문명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바위에 사각형 홀을 파놓은 ‘알디완(Al-Diwan)’이 있는데 정치적인 토론이나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홀 안에 있는 널찍한 돌벤치는 로마인들처럼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즐기던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바위 벽면에 새겨진 글씨들이 오래된 시간 속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사막의 협곡 속에 지어진 수영장과 콘서트홀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의 풀장 너머로 보이는 장엄한 협곡 풍경.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의 풀장 너머로 보이는 장엄한 협곡 풍경.
알울라의 사막을 다니다 보면 깜짝 놀랄 만한 건축물도 나타난다. 외벽이 온통 거울로 된 ‘마라야 콘서트홀’은 2019년 12월 알울라 개막축제가 열린 곳이다. 500석 규모의 이 홀에서는 일 디보, 야니, 라이어널 리치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홀은 마치 신기루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거울이 주변의 계곡과 바위, 모래사막을 비추기 때문에 마치 건물 자체가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총연장 170km의 네옴 프로젝트의 ‘더 라인(The Line)’의 외벽도 거울처럼 반사되는 태양광 패널을 붙일 예정인데, 마라야 콘서트홀은 더 라인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처럼 보인다.

명상하는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 모습의 예술품이 놓여 있는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 계곡 바위.
명상하는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 모습의 예술품이 놓여 있는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 계곡 바위.
기암괴석의 사막의 협곡 속에 펼쳐지는 수영장도 놀랍다. 명상수련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에는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이 참선을 하는 모습의 예술 작품이 놓여 있는 바위가 있다. 그런데 그 옆으로 코발트블루 색으로 빛나는 수영장이 펼쳐져 있고, 빨간색, 초록색 비키니를 입은 여인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막 한가운데 인피니티 풀장이라니! 물은 어디서 구했을까. 리조트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오아시스 지역이라 땅을 파면 지하수가 나온다”고 했다. 사우디의 공공 해변에서는 온몸을 가리는 ‘부르키니’ 수영복을 입어야 하지만, 프라이빗 수영장이나 해변에서는 비키니도 가능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자가 이틀간 머물렀던 사막의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바위 속에 숨어 있는 ‘샤덴(Shaden) 리조트’는 단층짜리 낮은 호텔이었다. 밤이 내려면 사막 하늘에 선명한 별이 떠오르고,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열면 바위 틈 사이 구멍에 집을 짓고 사는 새들이 먹이를 찾으러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대추야자를 비롯한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 중 하나였다.

#관광 오아시스#사우디#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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