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스승’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향년 95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1일 18시 46분


2012년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왼쪽)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집전한 팔리움 수여 미사에 참석해 최근 1년간 임명된 각국 대주교 44명과 함께 팔리움을 받는고 있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목과 어깨에 두르는 고리 모양의 양털 띠로 주교 임무의 충실성과 교황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고 교황청과 일치됨을 보여준다.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대주교를 2006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012년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왼쪽)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집전한 팔리움 수여 미사에 참석해 최근 1년간 임명된 각국 대주교 44명과 함께 팔리움을 받는고 있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목과 어깨에 두르는 고리 모양의 양털 띠로 주교 임무의 충실성과 교황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고 교황청과 일치됨을 보여준다.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대주교를 2006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베네딕토 16세(본명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전 교황이 31일(현지 시간) 선종했다. 향년 95세.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독일 출신인 베네틱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에 올랐다. 2013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교황직을 사임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바티칸 역사상 598년 만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 교황’ 호칭을 받아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베네틱토 16세가 위독하다며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교회에 대한 사랑의 증인으로 끝까지 그를 위로하고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마르크틀암인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독일 뮌헨대와 프라이징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53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7년부터 1969년까지 뮌스터대, 프라이징대, 튀빙겐대 강단에 섰다. 1977년 뮌헨 대주교에 오른 뒤 4개월 후 추기경에 임명됐고 1981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됐다.

‘진리의 수호자’란 사목 표어처럼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상과 무신론, 세속주의, 소비 만능주의, 교회의 부패에 대해 양보 없이 맞서 싸웠다. 일부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뿌리 뽑기 위해 애썼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왼쪽)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로 두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왼쪽)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로 두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10개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21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며 유럽의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집필한 책은 60권이 넘는다. 사제인 형 게오르크 라칭거와 함께 쓴 책도 있다. 예수의 실체를 둘러싼 각종 주장을 반박한 명저 ‘나자렛 예수’는 ‘반(反) 다빈치 코드’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규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의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사임할 당시 진보 성향인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신념의 차이에 대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 실화는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으로 제작됐고, 동명의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베네딕토 16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독일 뮌스터대에서 학생신부로 유학할 당시 교수로 김 추기경을 가르쳤다.

2006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2006년에는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다. 2007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접견한 후 친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경기 이천 화재 참사 때는 위로 전문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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