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13년. 요르단 출장 길에서 만났던 사해(死海) 바다의 분홍빛 노을은 내 깊은 곳까지 고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군데 잊을 수 없는 유적이 있었다. 바로 페트라의 붉은 사암에 새겨진 웅장한 건축물 ‘알 카즈네’였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마지막 성배’에 나왔던 신비로운 건물이다.
BC1세기 경부터 이곳에 살았던 나바테아인들이 세웠던 고대왕국의 수도 페트라 알 카즈네에 가기 위해서는 1.2km에 달하는 반드시 붉은 사암 협곡인 시크(Al-Siq)를 지나야 한다. 협곡의 바위들에는 바람에 의해 풍화돼 신비로운 물결 무늬가 가득하다. 협곡의 아랫부분엔 수로가 형성돼 있어서 사막의 도시 페트라 시민들이 어떻게 빗물을 활용하고 도시를 운영했는지를 보여준다.
알시크가 끝날 무렵 거짓말처럼 ‘알 카즈네’가 등장한다. 좁은 계곡의 틈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헬리니즘 양식의 웅장한 건축물이 나오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풍경이다.
알카즈네를 지나면 페트라의 도시가 나오는데, 암반 속에 지어진 무덤과 왕궁, 로마시대 경기장, 신전까지 가득하다. BC1세기~AD1세기에 사막의 상업과 무역을 주도했던 캐러반들이 세운 나바테인 왕국은 특히 빗물을 저장하는 댐과 저수지, 수로 등 치수시설에 높은 기술을 갖고 있어 사막에서도 1년 내내 물 부족없이 살 수 있어 여행자와 상인들을 위한 도시로 융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9년에야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관광지로 개방한 고대도시 알울라에서 요르단 페트라와 똑같은 붉은 사암의 웅장한 건축물을 다시 만났다. 바로 페트라를 건설했던 나바테아 문명의 사람들이 와디럼 사막(붉은 모래 사막)을 건너 남쪽에 세운 도시가 알울라의 ‘헤그라’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7세기 이슬람 문명 이후의 문화유산만을 국가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문명이 얽혀 있는 문화유산은 외부인들에게 공개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가 ‘비전2030’을 발표한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알울라는 사우디 관광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헤그라에는 바위 전면부(파사드)을 깎아서 부조처럼 건물의 입구를 표현해놓은 110개의 건축물이 있다. 페트라에 있는 알카즈네 신전과 똑같은 형식으로 깎아낸 건축물이다. 그 중 가장 큰 무덤 건축물은 ‘카스르 알파리드(Qasr AlFarid)’라고 불리는 쿠자의 아들의 무덤이다.
기둥이 4개나 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묻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커다란 산에 가까운 붉은 사암을 비계도 설치하지 않고 어떻게 깎아냈을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바위 위에 올라가 발밑을 파내려오면서 전면부를 조각하면서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밑그림도 없이 둥근 바위를 깎아 건축물처럼 만들어낸 솜씨가 놀랍다. 무덤 입구 위에는 독수리와 매 또는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그 위에는 지붕 위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데 무덤 주인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헤그라의 가이드는 “나바테아 왕국의 도시 헤그라에서 현재 남아 있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은 도시의 가장 높은 암벽에 조성된 무덤”이라며 “사람들이 살고 있던 주거지와 신전, 우물 등 도시 유적은 땅 밑에 묻혀서 현재 발굴 중”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주도하는 발굴팀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북서쪽으로 1100km 떨어진 알울라는 카라반 무역이 융성하던 고대왕국 다단왕국(BC 6~1세기)의 수도였으며,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왕국의 주요 남부도시였다.
다단 왕국이나 나바테아 왕국 모두 사막의 대상무역으로 융성했던 도시다. 아라바이아 반도 남부에 있는 예멘으로 들어온 아시아의 향신료와 유황, 몰약 등의 값비싼 물품을 실은 대상들이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통로에 자리잡은 사막의 오아시스 무역 도시였기 때문이다. 헤그라에는 대추야자 숲이 울창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암 산맥인 ‘자발 이틀립’에는 바위 틈새 사이로 시원한 천연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좁은 협곡이 있다. 이 곳에는 2000여년 전에 인공적으로 바위 굴을 파놓은 ‘알 디완(Al-Diwan)’이라고 불리는 사각형 홀이 있는데 왕궁의 회의나 연회, 콘서트가 열리던 곳이라고 한다.
12미터 높이의 홀은 목소리가 잘 울려 지도자들의 연설 장소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홀 안에는 돌로 만든 널찍한 벤치가 3개의 벽면에 놓여 있는데 로마시대 사람들처럼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나바테아 왕국의 사람들은 천연의 수자원을 활용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헤그라에도 페트라처럼 빗물을 저장하는 탱크와 수로 시스템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바테안 문명인들의 숙련된 물관리에 대한 명성은 이름과도 연관된다. ‘나바테안’은 아랍어 ‘나바투(Nabatu)’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바투는 ‘우물에서 샘솟는 물’이라는 뜻이다. 헤그라의 ‘디완’에서도 지붕 위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저장해 한쪽으로 흘려 손을 씻거나 음식을 준비하는데 쓴 시설이 남아 있다.
헤그라 바위 협곡에 있는 바위 중에는 우리나라 ‘반구대 암각화’처럼 수천년 전부터 새겨놓은 다양한 문자와 소, 염소, 새를 그린 암각화 그림이 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나 여행자, 순례자들이 신에게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빌고, 제례의식을 하며 남겨놓은 메시지다.
아랍어로 ‘자발(Jabal)’은 산을 뜻하는데, ‘자발 이크마(이크마 산)’은 신성한 명상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곳 계곡 바위에는 아람어, 타무드어, 다단어, 나바테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등 온갖 고대 언어로 쓰인 명문과 암각화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곳을 ‘오픈 뮤지엄’ 또는 ‘고대의 트위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울라 지역은 수많은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발굴과 연구를 맡고 있다. 자발 이크마에서 만난 프랑스 학자 뮈라테 나탈리 교수는 “바위에 쓰인 수많은 고대 언어는 아랍어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헤그라에는 나바테아 왕국 이전의 고대도시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BC 8세기부터 AD1 세기까지 융성했던 다단 왕국과 리히얀 왕국의 유적이다. 거대한 붉은 암벽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는 입구 위쪽에 사자 조각상이 있어 ‘사자 무덤’(Lion Tomb)으로 불리는 무덤이 가장 유명하다.
다단에는 고고학 발굴이 현재 진행 중인데 거대한 저수조 탱크와 하늘의 신인 ‘두 가이바(Dhu Gaybah)’에게 바쳐진 신전도 발견됐다. 신전 주변에는 조각상과 향 촛대, 램프 등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고, 시장과 주거지, 돌을 깎고 다듬는 공방과 학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헤그라의 황량한 대지에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의 기울기가 변할 때마다 바위에 조각된 그림과 글씨들은 다양한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대추야자가 우거진 숲 속이나 울퉁불퉁한 바위 계곡 속에 앉아 있다보면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눈을 감으면 사막의 모래에 묻힌 오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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