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3/문학평론 당선작]지금, 여기, 회색지대, 그리고 “빨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일 03시 00분


○ 당선소감
문학이 결국… 저를 죽지 않고 살게 만듭니다


민가경 씨
민가경 씨
세상에서 독후감 숙제를 제일 싫어하던 아이가 자라 오늘날 제가 된 경과를 곱씹어 보면, 문학이 결국 제 29년을 숙주 삼아 자신의 효용을 증명했구나 싶습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한 직장에서 76번의 월급을 받는 동안 미련의 더께가 내려앉아 비대해진 책장을 보고 있으면, 문학이란 유령이 불쑥 틈입해 와 ‘지금 뭐 하고 있느냐’는 말로 저를 치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다만 어떻든 간에 지금의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저를 죽지 않고 살게 만듭니다.

이승하 교수님을 비롯한 중앙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특히, 난데없이 문학 판에 뛰어든 제자에게 평론의 기능을 알려주신 정은경 교수님. 문학의 구원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죠. 사실 그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신 가르침과 용기를 잊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

미숙한 글이지만 그 가능성을 믿고 길을 열어주신 신수정, 김영찬 심사위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기회를 제 어깨에 지워주신 책임으로 여기려 합니다. 혐오하고 담 쌓는 일에 언어와 활자를 쓰는 이 부박한 시대에, 문학과 평론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고투하며 써 나가겠습니다. 낙관을 배제하고 희망을 말하는 평론가가 되겠습니다.

내가 호명하지 않아도 호명되고 있음을 알 모든 당신께 고맙습니다. 특히 나의 한때를 티끌 없는 마음으로 함께해 준, 지나간 당신, 많이 고마웠습니다. 신춘 당선의 영광은 내게 생명을 준 어머니 이금섬 씨, 아버지 민병용 씨와 하늘에서 보고 있을 이모 희숙 씨께 올립니다.

△1994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석사 재학




○ 심사평
자신만의 문장-독법으로 ‘매혹 지점’ 되짚어줘


김영찬 씨(왼쪽)와 신수정 씨.
김영찬 씨(왼쪽)와 신수정 씨.
‘‘나’는 이미 (당신)을 알고 있을 것이다―유계영의 시’는 유려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유계영의 시에 나타나는 ‘나’에 관한 사유를 ‘새로움’이라는 화두와 연결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지나치게 텍스트에 밀착한 나머지 객관적 거리 확보에 실패한 다수의 시 비평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다소 밋밋한 전개가 아쉬웠다.

‘내가 당신에게 진실할 때 가능해지는 일―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의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문학동네)에 드러나는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주체의 문제를 곡진하게 풀어냈다. 진심이 깃든 문장과 간결한 논지 전개가 오랜 습작의 내공을 보여줬다. 끝까지 당선작과 경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익숙한 주제라는 지적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지금, 여기, 회색지대, 그리고 “빨강”’은 이유리의 단편에 나타나는 ‘빨강’이라는 색채에 주목하며 그로부터 ‘모든 감각적 정서적 감응의 뿌리는 사랑’임을 역설하는 중요한 징후를 포착해 낸다. 때로 감정적 절제가 아쉬울 정도로 분석 텍스트에 대한 감응력의 밀도를 자랑하는 문장들이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점은 오히려 최근 비평에서 찾아보기 힘든 활기와 열정의 배후로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문학평론은 자신만의 문장, 자신만의 독법으로 해당 텍스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매혹의 지점을 다시 한번 되짚어주는 작업이 아닐까. 올해 당선작은 너무 당연해서 오랫동안 간과해 왔던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줬다.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김영찬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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