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화강암 위에 직접 색을 칠해 그렸다는 점입니다. 동서양의 벽화가 대부분 벽에 석회를 칠한 바탕 위에 그린 것과 다릅니다. 화강암 위에 직접 천연안료를 발라 그린 고분벽화는 채색과 도상이 수려한 걸작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 연구 전문가이자 문활람 작가(한국채색화)가 고구려 고분 벽화 바탕재 재현 기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가 ‘화강말’로 이름 붙인 벽화 바탕재와 안료(특허등록번호 제10-2474297호)는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가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과정을 연구한 것은 일본 도쿄 예술대 박사과정 유학 시절 때부터 시작됐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이어간 문 작가는 지난해 지도교수인 방병선 교수와 함께 고구려 고분벽화를 복원하는 특허물질을 개발하고 바탕재의 복원방법에 대한 특허를 인정받았다.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 연구를 위해서는 자유롭게 현장을 감상하거나, 실제로 똑같은 방식으로 벽화를 그려봐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쉽게 갈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구하거나 교육하고,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감상하게 하려면 최대한 유사하게 복원해낸 복제품(Replica)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최첨단 IT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복원’이지요. 그러나 디지털 복원은 현장감을 느끼거나 벽화의 물성(마티에르·matiere)을 제대로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에 화강암 바탕재 재연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재연하려면 진짜 화강암 판석 위에 고분벽화를 직접 그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게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내부 벽면을 장식하는 가로 3m, 높이 3m, 지붕까지 5~6m 높이의 화강암 판석을 쌓아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 때문에 재현하더라도 이동과 전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 작가는 화강암 판석의 경량화와 이동성이 가능한 방법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만든 화강암 바탕재는 화강암 원석을 잘게 분쇄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화강암을 깬 후 알갱이가 큰 것과 작은 것, 가늘고 고운 것 등 입자별로 다양한 크기로 만든다. 그리고 나무판 위에 전통한지를 바르고, 그 위에 전통 아교를 바른 후 화강암 돌가루를 알갱이별로 다양하게 쌓아올린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연마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후 아교를 잘 말리면 화강암 돌가루는 갈라짐이 없고, 탄탄한 화강암 판으로 태어난다.
“화강암 돌가루로 만든 화강암 판은 500배 배율의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봐도 화강암 원석과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돌판에 직접 그린 벽화하고 완전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화강암 특유의 마티에르(物性)를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두께가 0.5cm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무게가 화강암 원석보다 100배나 가벼운 것이 최대의 장점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아름다움의 비결은 무엇인가.
“고구려 벽화의 도상은 거의 완전체다. 같은 현무라고 하더라도 도상의 수려함과 완벽한 비율은 다른 그림과 비교가 안된다. 필치도 색감도 엄청나다. 왜냐하면 석회벽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화강암이라는 원재료 자체에 직접 석채 안료를 발라 원래의 돌이 갖고 있는 영롱한 색감을 간직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돌판에 직접 그려진 경우는 없다. 라스코 동굴 벽화의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회 동굴에 그린 것이다. 고구려 벽화도 초기에는 석회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고구려 후기에 조성된 강서대묘, 강서중묘의 사신도는 화강암 돌판 위에 돌가루 천연안료로 그린 전무후무한 기법으로 그려졌다. 또한 고구려벽화를 보면 당시의 생활 풍속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문헌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고분벽화는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문화를 향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예술품이다. 고구려 고분 안의 유물은 이미 도굴되고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벽화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 화강암 위에 직접 그린 그림이 왜 회벽에 그린 그림보다 우수한가.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화강암 특유의 울퉁불퉁한 요철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이유는 요철 사이로 물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요철 부분에 튀어나와 있는 곳에 묻어 있는 물감이 있고, 움푹 들어가 있는 물감이 있기 때문에 색감이 다채롭고 깊이가 느껴진다. 또한 색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화강암 위에 돌에서 채취한 천연안료를 직접 발라서 그림은 광물질이 빚어내는 매력과 아름다움이 오랜기간 보존될 수 있다. 반면에 석회벽의 경우에는 석회를 칠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원색이 갖고 있는 색감이 달라진다. 약간의 흰색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석회가 떨어지면 그림 자체도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석회벽에 그린 그림은 오래 보존하기가 힘들다.”
문 작가는 나무로 고구려 강서대묘 석실고분의 구조를 입체퍼즐처럼 짠 다음에, 내부에 자신이 특허를 얻은 화강암 바탕재료인 ‘화강말’을 씌워서 고분벽화를 재연해내는 복원과정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의 돌을 만지는 기술은 어마무시했다.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장군총을 보면 거의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준이다. 엄청나게 무거운 화강암을 정교하게 자르고, 다듬고, 쌓는 기술이 어마어마하다. 45도 각도로 계단식으로 쌓는 ‘들여 쌓기’ 공법이다. 화강암 표면에 홈을 파서 다음에 올라가는 돌을 끼워놓는다. 이게 사실은 고구려에서 성곽을 쌓는 공법인데 이걸 무덤에 적용한 것이다. 강서대묘 석실 내부를 보면 사방의 벽면 위로 지붕이 점점 좁혀지는 형태로 올라가 있는데, 모서리를 받치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돌이 엄청나다. 삼각형 모양의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놨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정말 돌을 갖고 놀았음을 알 수 있다.”
문 작가는 화강암 돌가루를 활용한 바탕재 뿐 아니라 채색하는 전통 안료도 개발했다. 그는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의 색깔이 나는 천연암석의 돌가루로 채색하는 전통안료인 ‘석채(石彩)’는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미 존재했다”며 “그러나 화강암을 분쇄하고 가공해서 안료로 만든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채색화 화가로서 본 특허물질인 ‘화강말’과 특허기법인 ‘벽화바탕재 재현방법’을 창작작품에도 활용하고 있다. 이달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무우수 갤러리에서 열리는 문활람 초대 개인전에서는 ‘아프리카에서 고구려까지’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그는 “고구려의 벽화무덤이 내포하는 영원성과, 사막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생명성은 인류의 공통된 역사를 하나의 시간과 공간으로 엮는 ‘띠’”라며 “인류와 문화의 시원 및 동전(東傳)의 루트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전시를 설명했다.
“제가 고구려벽화 고분의 연구복원을 진행하면서 고구려 문화의 기저에는 돌의 스토리가 배경에 있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됐습니다. 천연석채라는 안료의 물성은 우주적 본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광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광물의 색소는 인위적인 혼합 없이 창조된 그대로의 DNA를 품고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화강암은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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