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서 일하다 최근 게임 회사로 이직한 이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간 한국 콘텐츠의 미래가 게임에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영화 드라마 업계에선 서사가 탄탄한 웹소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성공이 눈에 띄었다”며 “게임 업계도 지식재산권(IP) 발굴 가능성을 지닌 원천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했다.
‘한계선을 넘다’는 판타지 장편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전 4권·황금가지)를 게임과 영상으로 만들기 위한 삽화를 담은 책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이영도 작가(51)가 2002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했고, 2003년 종이책으로 출간돼 60만 부 이상 팔렸다. 현재 국내 게임업체 크래프톤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게임과 영상으로 만들고 있는데, 시각화 작업의 초안을 담은 게 ‘한계선을 넘다’다.
책에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삽화 300여 점이 담겼다. 눈에 띄는 건 한국적 색채가 짙다는 점이다. 도깨비 남성 캐릭터인 ‘비형 스라블’의 옷은 흰색이다. 비형 스라블은 짚신을 신고, 머리엔 상투를 튼 후에 풀어지지 않도록 위에 꽂는 장식인 ‘동곳’을 달았다. 설화에서 방금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인간이 신을 모시는 종교적 집결지인 ‘하인샤 대사원’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스님들은 회색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암자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은 경남 합천 해인사를 떠올리게 한다. 끈에 매단 뒤 공중에 돌려 소리를 내는 독특한 피리인 ‘무릿매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은 쥐불놀이의 한 장면 같다.
영화 ‘스타워즈’ ‘해리포터’ 시리즈에 참여한 미국 할리우드의 디자이너 이언 매케이그가 시각화에 참여해서 그런지 서양에서 익숙할 만한 그림도 보인다. 중세 유럽의 성 같은 왕국의 옛 수도, 도끼나 단검 등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전투용 무기는 영미권 판타지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한계선을 넘다’를 시작으로 내년엔 그래픽노블이 출간되고, 이르면 2025년엔 롤플레잉게임(RPG)이 나온다니 반응이 어떨지 기대된다.
지난해 출판계는 영화 드라마가 몰고 온 열풍의 수혜를 단단히 받았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2022년)의 각본집인 ‘헤어질 결심 각본’(을유문화사),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대본집 ‘그 해 우리는’(전 2권·김영사)이 인기를 끌었다. ‘한계선을 넘다’가 출간 직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종합 1위에 오른 것을 보니 게임업계와 출판계도 이미 동떨어진 시장이 아니다.
이젠 한국 문학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 콘텐츠 붐을 일으킬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해외 유저들이 한국 게임을 즐기고, 이 인기 덕에 한국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이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북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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