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화장, 집단의 표지에서 권력 분산의 수단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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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스토리/리사 엘드리지 지음·솝희 옮김/268쪽·3만2000원·글항아리

고대 이집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네페르티티 흉상. 1912년 이집트 유적을 발굴하던 중 독일의 고고학자가 발견했고, 밀반출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왼쪽 사진). 벨기에 화가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1399∼1464)이 1460년에 그린 
‘여인의 초상화’.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질병이 만연하던 유럽 중세 시대에는 여성의 밝고 투명한 피부가 
건강함과 생식능력을 드러내는 징표였다. 글항아리 제공
고대 이집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네페르티티 흉상. 1912년 이집트 유적을 발굴하던 중 독일의 고고학자가 발견했고, 밀반출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왼쪽 사진). 벨기에 화가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1399∼1464)이 1460년에 그린 ‘여인의 초상화’.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질병이 만연하던 유럽 중세 시대에는 여성의 밝고 투명한 피부가 건강함과 생식능력을 드러내는 징표였다. 글항아리 제공
인간은 왜 얼굴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을까. 화장의 시작은 단순히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있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오커’(황토)는 수만 년 전 사람들이 몸과 얼굴에 발라 집단의 소속임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오커를 바르는 행위를 통해 고대인은 적에게 맞설 용기도 얻었다고 한다.

이집트인은 검은 먹 성분의 재료인 ‘콜’을 눈에 발라 보호하고자 했다. 1912년 세상에 알려진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기원전 1340년)의 흉상은 눈가가 검게 칠해져 있다. 오늘날 눈매를 강조한 화장과 흡사하다.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치아를 검게 물들이기도 했다. ‘흑치’는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며,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의 표현이었다.

세계적 화장품 기업 랑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저자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한 내공을 살려 화장의 기원부터 ‘뮤즈’가 된 인물, 뷰티 산업의 발전사 등을 정리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전 세계 문명을 넘나들며 화장의 역사를 파헤친다.

진화심리학을 빌려 화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밝고 투명한 피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얼굴을 치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였다. 그리스와 중국이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고대에도 두 문명은 모두 피부 미백을 위해 납 성분을 사용했다. 저자는 ‘하얀 얼굴’을 선호하는 건 피부 빛깔로 생식능력을 파악하려는 습성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배란기 여성의 피부는 월경 중에 비해 밝아지고, 임신 후엔 피부색이 짙어진다. 이 때문에 밝은 피부가 젊음과 건강한 생식능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밝고 하얀 피부를 가지려면 볕에 그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류 계급의 표시이기도 했다.

각 시대의 화장법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뮤즈도 소개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들을 따라 화장하는 행위는 어쩌면 집단적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본능적 욕구일 수도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 엘레인 슬레이터의 말을 인용하며 화장의 본질을 되새긴다. “화장 행위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한쪽 끝에 만화에 가까울 정도로 결점 없는 모습이 있다면 반대쪽 끝에는 민얼굴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일상의 화장이 존재한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 피임약 도입 등 여성의 자율성 확대와 미용 산업의 부흥은 역사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강조한다. 화장이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비난받던 시기는 대체로 여성이 가장 억압받던 시기와 일치했다.

저자는 화장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확장하며 뷰티산업이 미적 기준을 획일화한다는 비판에 맞서고자 한다. “이상적인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사회에서 용인된다면 화장은 권력 분산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완벽한 얼굴’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권력의 수단#메이크업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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