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공부·금연…새해 다짐 벌써 포기하셨다고요?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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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래의 ‘나’를 ‘남’처럼 여기는 심리

매년 1월이 되면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롭게 다짐해보지만 이를 연말까지 꾸준히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새해 다짐을 했던 우리의 의지는 왜 이렇게 쉽게 꺾이는 걸까. 게이티이미지뱅크


새해가 되면 운동, 다이어트, 공부, 독서, 금주, 금연 등 매년 반복되는 다짐을 하지만 며칠 만에 흐지부지되곤 한다. 미국의 설문기관 SBRI(The Statistic Brain Research Institute)에 따르면 새해 다짐을 하는 사람의 8%만이 결심을 끝까지 지킨다고 한다. 10명 중 9명은 중도 포기하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거나 의지가 부족한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사실 이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여러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 연속성(self-continuity)’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아 연속성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얼마나 동일하게 느껴지는가를 나타낸다. 먼 미래로 갈수록 자아 연속성이 낮아지고 미래의 나를 더 남처럼 느끼게 된다. 현재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 남처럼 느껴지는 먼 미래의 나를 위해 다이어트, 운동, 금연 등을 힘들게 실천하지 않게 되는 이유다.
현재의 나에겐 관대, 미래의 나에겐 가혹
이런 경향은 우리가 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 남에게 하는 것처럼 냉정한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에밀리 프로닌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8년 발표한 ‘타인에게 하듯 미래의 나를 대하기: 심리적 거리와 의사 결정’이라는 논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프로닌 교수는 역겨운 맛에 대한 과학 실험을 한다고 꾸미고 참가자 153명을 모집했다. 실험을 위해서는 케첩과 간장을 섞은 역한 액체를 마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즉시, 나머지는 한 학기 뒤에 실험에 참여하도록 했다. 각 그룹에게 케첩과 간장이 섞인 액체를 얼마나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즉시 실험에 참여하는 이들은 평균 두 숟가락 정도를 먹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 학기 뒤에 참여하는 이들은 평균적으로 반 컵보다 조금 적은 정도의 양을 먹겠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참가자들은 얼마나 먹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평균 반 컵 정도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한 학기 이후 내가 먹겠다고 답한 양과 (시점과 관계없이) 다른 참가자가 먹어야 한다고 말한 액체의 양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프로닌 교수는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처럼 걱정을 덜 하면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먼 미래의 나도 현재의 나와 같은 존재지만 우리의 마음은 미래의 나를 타인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행복을 희생해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뇌에서도 미래의 나를 타인처럼 인식
이 같은 현상은 뇌의 신경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와 미래의 자신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달랐다. 오히려 미래의 자신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타인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상당부분 일치했다.

할 허쉬필드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통해 살펴본 결과 현재 자기 자신과 관련성이 높은 것에 대해 생각할 때는 뇌의 전전두엽 피질(MPFC·mesial prefrontal cortex)과 전측 대상피질(rACC·rostral anterior cingulate cortex)의 일부가 활성화됐다. 하지만 10년 뒤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는 해당 부분의 활성화 정도가 크게 감소했다. 오히려 타인을 생각할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신경 활동과 더 유사하게 관찰됐다.
“미래의 나를 생생하게 느껴봐야”
남 같이 멀게 느껴지는 미래의 나를 위해 당장 무거운 몸을 일으켜 헬스장으로 향하기는 어렵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사고 싶은 걸 참아 저축을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건강이나 노후 대비 같은 중요한 장기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다. 계획을 꾸준히 이뤄나가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학자들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생생하고 감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거나 자신의 미래 모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다.

할 허쉬필드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맨 위 사진)는 또 다른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맨 아래 사진과 같이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노인이 된 각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이들에게 “1000달러를 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늙은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한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2배 더 많은 금액을 노후 자금으로 저축하겠다고 답했다. 할 허쉬필드 교수 개인 홈페이지
할 허쉬필드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맨 위 사진)는 또 다른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맨 아래 사진과 같이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노인이 된 각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이들에게 “1000달러를 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늙은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한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2배 더 많은 금액을 노후 자금으로 저축하겠다고 답했다. 할 허쉬필드 교수 개인 홈페이지

2018년 미국 심리학회 실험심리학 저널에 실린 ‘미래의 자기 연속성이 건강과 운동에 미치는 연관성’ 논문에서는 미래의 나에게 편지 쓰기가 건강과 관련한 현재의 행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49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3개월 후의 자신에게, 다른 그룹에게는 2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다. 편지에는 미래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옆에는 누가 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도록 했다.

편지 쓰기 과제를 실시한 이후 두 그룹에게 며칠 동안 하루 운동 시간을 기록하도록 했더니 두 그룹 모두 평소보다 운동량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아브라함 러치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노스리지캠퍼스 교수는 “편지 쓰기를 통해 미래에 대한 자기 연속성이 강화되면서 미래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량을 늘린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현재와 미래의 내가 가깝다고 느낄수록 미래의 자신을 염두에 둔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편지 쓰기 등을 통해 자기 연속성을 강화하면 운동 뿐 아니라 저축 늘리기, 자격증 따기, 영어 공부하기 등 장기적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장기 목표를 위해 현재의 내가 희생해야 하는 일의 실천 단위를 작게 쪼개면 심리적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한 달에 30만원 저금하기‘ 같은 월별 계획보다 ‘하루에 커피 1, 2잔 덜 사먹기‘ 같은 일별 계획으로 나눠 실천 단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20년 넘게 자아 연속성에 대해 연구해온 허쉬필드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가 왜 미래의 나를 남처럼 여기는지에 대한 기원은 연구된 바가 없다”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나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고 현재의 내가 희생해야 하는 고통의 단위를 줄이면 장기적 목표 달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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