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하이노 팔케, 외르크 뢰머 지음·김용기, 정경숙 옮김/376쪽·2만5000원·에코리브르
1971년 어느 여름날 독일의 시골 마을. 가족 모두가 정원에 모여 있지만 한 소년은 어두운 방에서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고 있다. 화면에는 아폴로 15호의 달착륙선 팰컨이 달에서 찍은 흑백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다. 인류의 대담한 시도에 매료된 이 소년은 자라서 세계 최초의 블랙홀 사진을 찍은 천문학자가 된다. 이 책의 공동 저자 하이노 팔케 네덜란드 랏바우트대 교수 이야기다. 그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과학 기자인 외르크 뢰머와 함께 책을 썼다.
책의 첫 장면은 인간이 처음으로 관측한 블랙홀 사진이 공개된 벨기에 브뤼셀의 기자회견장이다. 2019년 4월 10일, 당시 사건지평선망원경(EHT)협력단의 유럽연합(EU) 대표이자 EHT 과학위원회 의장이었던 팔케 교수가 블랙홀 사진을 소개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지켜본다는 사실에 긴장하다 ‘광년’을 ‘킬로미터’로 잘못 말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열기 속에서 이내 설명을 이어간다. 공개 후 몇 시간 만에 40억 명이 블랙홀 사진을 조회할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블랙홀은 연료를 소모해 완전히 타버린 별들의 무덤이다. 질량이 극도로 커 심하게 휜 이 공간은 빛을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이 때문에 관측이 어려웠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전파 망원경을 연결하는 ‘사건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해졌다. 책은 블랙홀과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으로 시작해 블랙홀 관측의 여정을 소개한다.
팔케 교수가 “사진 한 장에 인생의 연구가 담겼다”고 할 정도로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론적 설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망원경들이 팀플레이를 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사람의 실수는 물론 날씨까지 변수가 됐다. 영화처럼 좌절과 기쁨이 오간 순간을 소개한 저자는 책 막바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신을 이야기한다.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 위의 알갱이에 불과한 것이 인간”이라면서. 호기심 가득했던 소년의 꿈은 우주의 먼 블랙홀까지 닿았지만 결국 그는 자신과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 희망, 사랑으로 돌아왔다고 고백한다. 또한 모두가 오만한 정복자에서 겸손한 탐구자로 돌아가자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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