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가 먼저 인간의 마음에 닿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위해 구슬피 우는 곡소리, 첫사랑에게 바치는 풀피리 소리, 전의를 다지는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원초적인 이들 멜로디는 초기 인류에게서 ‘유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신경과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가 12일 출간한 ‘노래하는 뇌’(와이즈베리)는 “초기 인류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은 조화로운 노래였고, 그 유대 덕분에 거대한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이 만든 노래는 인간에게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이라는 6가지 세상을 빚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선조들이 일하던 낮 시간과 잠 못 이루던 밤 시간을 채워주었던 문명의 사운드트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뿐 아니라 노래가 인간 뇌에 미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풍부하게 담았다.
저자는 “인간이 지구상 다른 종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나 돌고래도 그들만의 언어인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췄고,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쓸 줄 안다. 체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개미도 해낸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해내지만 동물들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관계의 부호화(Encoding)’다.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처리방식으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옥타브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랫말을 짓는다.
음악이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말을 인용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릴 때 근력의 사용이 서로 율동적으로 조화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단 피라미드뿐일까. 세계 모든 문명은 노동요를 갖고 있다. 노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 관여한다. 응원가, 애국가, 교가, 군가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슬플 때 더 슬픈 발라드가 필요한 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는 프로락틴이란 호르몬이 담겨 있다. 프로락틴은 기쁨의 눈물이나 하품할 때 흘러나오는 눈물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나온다. 이 호르몬은 정신적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새 시작을 할 수 있게 돕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슬픈 음악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가상의 슬픔’을 선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노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마법은 단연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의 다채로운 플레이리스트가 담겼다. 그중 그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스콧의 ‘모두 안으로 들여(Bring ‘Em All In)’를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았다. 노랫말이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다. ‘모두 안으로 들여/어둠에서 온 것들도 들여/그늘에서 온 것도 들여, 그들을 빛 속에 세워.’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인류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음악 예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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