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린 날이었어요. … 59년을 함께 산 순한 부인이 누워있는 남편의 이불자락을 끌어다 덮으며 ‘한 이불 덮고 있습시다’ 하고 농담하자 모두 크게 웃었어요. 삶의 끝자락에 선 남편에게 건넨 용서와 사랑의 한마디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지막 인사로 귓가에 나지막이 기도해 드렸고요.”
간병사로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보던 저자는 자신이 과거 돌봤던 고인의 임종 장면을 노인에게 이같이 들려준다. 가족이 원해 간병사로서 고인의 임종까지 지켰던 것. 조금 길다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그는 이내 말한다. “나도 그렇게 해줘.”
‘죽음학(생명윤리학)’과 관련된 일을 하던 저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88세 노인을 22일 동안 돌본 기록이다.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인은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저자는 돌볼 뿐이다. 배변 조절이 되지 않자 노인은 당혹스러워한다. 코는 헐어서 딱지가 생기고, 몸에는 줄이 3개가 달린다. 소변줄과 복수를 빼기 위한 줄, 그리고 수액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돌보며 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저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자취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노인의 발을 마사지하고, 악몽을 꾸는 그를 위로한다.
마지막까지도 삶은 계속된다. 노인은 집에서부터 써 온 ‘황혼일기’를 병원에서도 계속 쓴다. 저자는 “삶의 마지막 자락으로 가는 하루하루가 특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노인에게 섬망 증세가 찾아온다. 노인은 뜬금없이 횡설수설하고, 시계를 잘못 본다. 침상을 올리자 비행기에 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저자는 노인이 섬망 속에서 “본부에 연락하라”고 지시하자 그에 맞춰 복도에 나가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하고 “보고했습니다!”라고 힘줘 말하기도 한다. 현실과 섬망 사이를 오가며 노인은 말한다. “한 열흘간 일하다 죽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환자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 문턱에서도 끝까지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생명을 지닌 인간”이라고 말한다. 환자와 의료진 간 오해도 생긴다. 의료진은 “시원하게 소변 좀 보게 해드릴까요”라고 묻고 소변줄을 단다. 하지만 노인은 뒤늦게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나쁜 짓이야”라고 불평한다. 저자는 책에서 “의료진은 환자에게 에두르지 말고 정확한 용어로 설명해 줘야 오해를 방지한다”며 “최소한 신체에 어떤 장치를 하고, 어떤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지는 설명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성 진통제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완화의료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자세히 파악한 뒤 자신에게 맞는 호스피스를 요구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임종의 고통을 겪던 노인은 기다렸던 큰손자가 왔을 때는 말을 못 하게 된 상태였다. 노인의 아들과 함께 임종을 지키던 저자는 그의 귀에 대고 힘주어 말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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