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6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아이들의 친부. “전 부인이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한 경찰이 맞닥뜨린 현장은 참혹했다. 바닥에는 어린아이 넷과 어머니, 동거 남성이 온몸에 선홍색 시반을 띤 채 쓰러져 있었다. 친모가 이별을 고하자 동거하던 남성이 계획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친부의 진술로 사건은 타살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였다. 일가족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부검 소견이 발표되자 이웃들 사이에서는 동거하던 남성이 고의로 가스를 누출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독일 법의학자로 “죽은 자의 몸과 주변에는 진실을 밝힐 ‘키보드’가 숨어 있다”고 믿는 저자는 떠도는 소문과 침묵의 현장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이들 가족이 숨지기 몇 주 전 입주한 이 주택은 보일러 계량기가 6년 동안 납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관리비를 체납하자 집주인이 보일러에 땜질을 해버린 것. 가스 배기관은 누더기 천과 신문지로 꽉 막혀 있었다. 한겨울 배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보려 이전 세입자가 한 일이었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뒤 부랴부랴 보일러 땜납을 제거했지만 배기관은 청소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관리 부실이 사인이었던 것이다.
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해마다 독일에서 2000명가량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를 덧붙인다. ‘만일 집집마다 일산화탄소 탐지기가 설치돼 있다면 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물음은 난방 관리 부실로 인한 소리 없는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밝힌다.
저자가 담아낸 다양한 사건 현장에서 죽은 자는 온몸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에는 토막살인, 강간, 의료 조작 등 참혹한 사건이 여럿 나오지만 진실을 좇는 과정은 묘한 위안을 준다. 저자는 “사망자가 평소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해도, 그가 피해를 당했는지 아닌지 검증하는 마지막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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