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시 정라동 일대에 지난해 9월 완공된 ‘이사부독도기념관(이하 기념관)’은 베일에 싸인 듯 주변 경관 속에 숨어 있다. 5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다는 설이 있는 정라동 일대는 앞으로는 육향산, 뒤로는 폐조선소와 공장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삼척항과 고작 500m 떨어져 있지만 바다를 볼 수 없는 구조다.
삼척시가 2017년 7월 기념관을 짓는 국제건축설계 공모를 냈을 때 건축가들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이토록 꽉 막힌 경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독도 기념관으로서의 역사적인 의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22개국 72개 팀이 응모한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은 심사위원장이었던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으로부터 “경관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육향산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31일 기념관에서 만난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송상헌 대표(45)와 박정환 대표(44˙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지가 처한 상황을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조차도 땅의 역사라고 여겼다. 오히려 바다 경관을 직접적으로 가져올 수 없었기에 다른 방식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념관 입구에 지어진 관광안내센터로 들어서서 계단 한 층을 내려가면 1m 깊이의 못이 나온다. 물이 흐르는 길목 바로 옆에 세워진 영토수호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난 유리창 너머로 깎아지른 육향산 하부 암반과 그 아래 잔잔한 못이 보인다. 육향산은 마치 바다 위 떠오른 섬과 같은 모습이다.
박 대표는 “육향산 일대는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을 당시 섬이었던 곳”이라며 “매립된 부지를 약 4m가량 파 내려 과거의 경관으로 되돌리면서 바다 위에 떠오른 독도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땅의 역사를 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관 자체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 4개 동으로 나뉜 건축물 내부에 육향산을 바라보는 전면 유리창을 낸 것도 관람객들이 건물 내외부를 자유롭게 거닐며 어디서든 섬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일이 설계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2019년 초 관광안내센터 부지 주변에서 1520년 지어진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매장문화재가 발굴되면서 추가 조사를 위해 1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성벽이 출토된 곳에서 20m 이내에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못의 면적이 줄고 건물 위치를 바꿔야 했다. 박 대표는 “처음 설계 의도와는 달라졌지만 이조차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각을 바꾸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삼척포진성의 성벽처럼 돌을 쌓아 올린 옹벽을 세우면 어떨까.’ 송 대표는 “삼척포진성 성벽 일부가 발견된 관광안내센터 앞에서 육향산 하부 경관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막돌 쌓기’ 방식으로 옹벽을 세워 공간의 역사성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설계도면을 수정하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지만 이마저도 건축물에 역사 한 페이지를 더한 셈이다.
착공 5년 만에 지어진 기념관은 이제 건축가의 손을 떠나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이 어떻게 쓰이길 바랄까. 송 대표는 “우리가 14,115㎡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를 관광안내센터와 영토수호기념관, 독도체험 공간, 복합휴게공간 등 4개 동으로 나뉜 건축물로 설계한 건 각각의 건물이 유연하게 다른 용도로 쓰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건물에서는 독도 전시, 다른 건물에서는 미술 전시, 광장에선 음악 공연, 휴게공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역사 강연이 펼쳐지는 상상을 합니다. 복합문화공간이 부족한 삼척시에서 이곳이 다채로운 쓰임새로 채워지길 바라요.” (박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