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수차례 재개발을 거치며 다양한 시간의 흔적이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언덕 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동네’는 어느새 누추하고 지워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고 이웃이 함께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장소들을 신성하게 바라보자고 제안한 전시가 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다. ‘뮈에인(myein)’은 ‘신성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전시는 사진작가 김정일 임정의 최봉림 김재경이 1980∼2000년대 서울 재개발 예정지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 196점을 선보인다. 김정일이 촬영한 기억 풍경 연작 53점과, 임정의의 사진 36점은 1980년대 서울을 담았다. 최봉림의 1990년 봉천동 출사 작업 65점은 이번에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다. 김재경의 연작 ‘mute’ 32점은 1999년 세기말 서울을, 후속 작업인 ‘mute2’ 연작 4점은 200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김정일은 1982년 어느 날 신문에 실린 40여 곳의 개발공고를 보고 사라질 공간을 기록했다. 관악구 봉천동의 공용 화장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판잣집, 성동구 금호동 바위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사진에 담겼다.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경기대, 계원예술대 등의 건축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달동네를 사진으로 찍으라는 과제를 냈던 임정의는 관악구 신림7동과 봉천5동, 성동구 금호동, 노원구 상계동을 높은 시선에서 바라본다. 최봉림은 1989년 봄 달동네 능선을 피사체로 선택해 집과 그곳 사람들의 풍경을 기록했다. 김재경은 화려한 외관이 아닌 사람들이 표출한 일상적인 환경을 도시의 진짜 모습이라 보고 좁은 골목과 계단을 추상화처럼 담았다. 3월 5일까지. 무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