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매혹적 환상으로 거듭난 일상적 불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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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사만타 슈웨블린 지음·엄지영 옮김/300쪽·1만6000원·창비

부부가 이혼한 뒤 딸은 엄마와 산다. 남자는 여느 때처럼 딸을 만나러 전 부인의 집에 간다. 집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어 보인다. 잔디도 단정하게 정돈돼 있다. 그때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던 사춘기 딸이 아빠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빠, 안녕.”

생기 넘쳐 보이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어딘가 이전과 달라졌다. 변화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아이가 거실에 놓인 새장에서 살아 있는 새를 꺼내 잡아먹기 시작한 것. 전 부인은 더 이상 딸을 맡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양육은 남자의 몫이 됐다. 남자는 딸의 방에 살아있는 새를 가져다 놓을까.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로 지난해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한 저자의 초기작 20편을 모았다. 표제작은 새를 잡아먹는 딸의 이야기를 그렸다. 툭툭 끊어지는 단문으로 짧게 써내려간 이야기에는 생생한 현실과 잔혹한 환상이 뒤섞여 있다. 부인을 죽여 여행가방에 넣어둔 것이 하루아침에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둔갑하거나 누군가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식이다.

기이하고 낯설어 보이지만 이들 이야기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감정이 담겨 있다. 바로 불안이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에 스며들어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 불안을 환상으로 표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환상은 깨지기 쉬운 모든 것과의 관계에 내재된 잔혹성을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고 평했다.

#입속의 새#매혹적 환상#일상적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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