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광화문 네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 회의가 열리는 14층 회의실 창문에서 바라보면 북악산 아래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이 한 눈에 보인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북악산과 인왕산, 그 뒤로 보이는 북한산까지 온통 새하얗게 변하고, 광화문 광장에도 하얀 눈발이 흩날린다.
2000년에 동아일보 신사옥이 준공된 이래 광화문 광장의 풍경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명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곳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축구팀 붉은악마 응원단들은 처음엔 동아일보 구사옥(현 일민미술관) 옥상에 있는 대형전광판이 마주 보이는 세종로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하자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의 숫자는 점점 많아져 광화문부터 시청앞 광장까지 연일 가득 메웠던 것이다. 당시 이러한 장엄한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숨은 명소가 바로 동아일보 사옥이었다. 광화문부터 시청앞까지 가득메운 응원단들의 함성과 도약, 어깨를 걸고 추는 춤들이 지신밟기가 되어 광화문이 깨어났다.
그 때부터 광화문은 왕복 20차선의 차도가 아닌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월드컵의 함성이 도로를 광장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과 국가대표팀의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을 14층 회의실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광화문 광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정치적 공간이 됐다. 2009년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지나갔고, 광우병, 세월호, 촛불집회, 태극기 집회 등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완공된 구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은 일제 총독부와 군사독재 시절 청와대를 마주보며 견제하기 위한 공간에 지어졌다. 실제로 구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이 사용하던 남자 화장실은 총독부(청와대)를 마주보고 있는 방향으로 소변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창문 밖으로 총독부를 바라보는 상태에서 소변을 보는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전설이 내려져왔다.
요즘 동아일보 사옥에서 광화문과 청와대를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고, 광화문 광장이 대폭 확장돼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제 권력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걸어다니는 문화와 산책의 한 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왕산-북악산-청와대-경복궁-광화문-송현동으로 이어지는 도심의 산책 코스는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는 답사길이자 최고의 핫 플레이스다.
광화문은 그 자체가 이질적 시간의 복합체다. 과거와 현재, 영광과 오욕, 지배와 피지배, 한국과 외국, 식민과 민족자주의 흔적이 공존하는 이 거리의 특징은 획일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화문의 대로변은 파리의 샹젤리제를 연상시키는 말쑥한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로 안쪽으로 열 발짝만 들어가도 실타래처럼 얽힌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골목마다 다른 이력과 단골을 가진 밥집, 술집, 가게…. 광화문의 골목은 이 공간의 자유와 개성을 담보해 왔다.
외국의 구도심에 가면 광장 주변에 수많은 역사 유적과 건물, 시장이 서 있는 곳이 많다. 서울의 경우 자동차에 내주었던 도심이 점차 광장으로 회복하고, 산책로로 연결되고 있다. 올해 말 광화문 광장 북쪽 월대까지 복원되면, 광화문과 경복궁이 얼마나 더 가까워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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