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1852~1919)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 대관식에 전달한 외교 선물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서 127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그중에서도 ‘흑칠나전이층농’은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 소재 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으로 수장고에서 나와 빛을 볼 수 있었다. 고종의 특명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농 하단부에 십장생(十長生) 문양 나전을 부착해 니콜라이 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1920년 일본에 실톱이 도입되며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잘라 붙이는 ‘끊음질’ 나전 기법이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일본보다 30년 앞서 조선 공예사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의 마지막 천재 화가로 불리는 장승업(1843~1897)의 걸작 2점도 최초 공개된다.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은 ‘고사인물도(故事人物畵·역사나 신화 속 인물과 관련된 일화를 그린 그림)’ 연작 4점 중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와 ‘취태백도(醉太白圖)’ 2점이다. 두 작품 모두 세로 174.3㎝ 가로 65㎝ 크기의 대작으로 학계에서도 알려진 바가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 왼쪽 하단에는 ‘吾園 張承業(오원 장승업)’ 서명 앞에 ‘朝鮮(조선)’이라는 국호를 붙여 이 작품이 외교 선물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진수영보(眞壽永寶·참다움과 장수, 영원한 보물)’를 새긴 ‘백동향로’ 2점도 선보인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니콜라이 2세와 두터운 친분 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친서는 30건에 이를 정도다. 첫 친서 역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서 출발했다. 당시 충정공을 특사로 파견해 전한 이 편지에는 “짐은 폐하(니콜라이 2세)가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해 주길 바라고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외교 선물 속에 위태로웠던 구한말 조선의 외교·정치사가 담긴 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앞으로도 나라 밖 중요 유물의 복원 등을 지원해 세계 속 우리 문화재 가치를 알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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