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好통/이소연]보호법 만들었지만… 22년째 갈 곳 없는 ‘파평윤씨 미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0일 03시 00분


이소연 기자
이소연 기자
“외국 기관에서 종종 제가 연구해온 미라를 기증해 달라고 요청해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지키고 연구해야 한다’고 답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힘만으로는 부족하네요.”

2002년 9월 경기 파주시 파평 윤씨 종중산 묘역에서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를 연구한 김한겸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68)는 9일 전화 통화에서 “법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 누구도 이 미라를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라는 세계 최초 모자 미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포함해 김 교수가 연구해온 총 8구의 미라는 그가 재직하던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과 고려대구로병원 부검실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20년 넘게 미라 보관 비용을 병원과 대학이 부담해 왔다. 그나마 김 교수가 2021년 3월 정년퇴직하면서 미라는 갈 곳이 마땅찮은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미라를 학술·역사적으로 ‘중요출토자료’로 인정하고 보존과 연구를 지원하는 매장문화재보호법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파평 윤씨 모자는 여전히 지원 대상이 아니다. 문화재청이 “법령 시행 전 묘지 이장 과정에서 출토된 인골과 미라에 대해서는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교수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미라를 기증하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관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는 현재 미라를 안치할 수 있는 냉동·냉장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고 연구와 보관을 위한 전문 인력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7월 법령이 시행된 뒤 올해 ‘중요출토자료 관리·지원 사업 예산’ 명목으로 문화재청이 받은 예산은 2억 원. 미라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시설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김 교수는 “수백 년 전의 세계를 담고 있는 미라를 지켜내야 한다”며 “앞으로 문화재청이 지원 범위와 연구 체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지원은 미라를 연구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매장문화재보호법#파평윤씨 미라#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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