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관에서 종종 제가 연구해온 미라를 기증해 달라고 요청해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지키고 연구해야 한다’고 답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힘만으로는 부족하네요.”
2002년 9월 경기 파주시 파평 윤씨 종중산 묘역에서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를 연구한 김한겸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68)는 9일 전화 통화에서 “법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 누구도 이 미라를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라는 세계 최초 모자 미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포함해 김 교수가 연구해온 총 8구의 미라는 그가 재직하던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과 고려대구로병원 부검실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20년 넘게 미라 보관 비용을 병원과 대학이 부담해 왔다. 그나마 김 교수가 2021년 3월 정년퇴직하면서 미라는 갈 곳이 마땅찮은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미라를 학술·역사적으로 ‘중요출토자료’로 인정하고 보존과 연구를 지원하는 매장문화재보호법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파평 윤씨 모자는 여전히 지원 대상이 아니다. 문화재청이 “법령 시행 전 묘지 이장 과정에서 출토된 인골과 미라에 대해서는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교수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미라를 기증하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관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는 현재 미라를 안치할 수 있는 냉동·냉장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고 연구와 보관을 위한 전문 인력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7월 법령이 시행된 뒤 올해 ‘중요출토자료 관리·지원 사업 예산’ 명목으로 문화재청이 받은 예산은 2억 원. 미라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시설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김 교수는 “수백 년 전의 세계를 담고 있는 미라를 지켜내야 한다”며 “앞으로 문화재청이 지원 범위와 연구 체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지원은 미라를 연구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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