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질문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바나나를 먹었을 때 기뻤죠?’였습니다.
‘기분이 어땠나요?’가 아니라 ‘기뻤죠?’라고 물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 때의 해프닝이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카텔란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당신의 작품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데이비드 다투나가 먹었을 때 기뻤나?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았고, 어쩌다 그런 모양이 나왔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모형 바나나를, 그 다음엔 금속 모형을 몇 달 동안 갖고 구상해보았는데, 전시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매력적인 버전이 없었다. 그 때 테스트한 작품을 집에 아직도 갖고 있다.
그러다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그냥 바나나를 그대로 설치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다 재활용이고, 일종의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
역시나.. ‘그 작품 그렇게 대단한 것 아냐’라는 아주 새침한 답변으로 제겐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사에 새로운 거 없잖아? 어차피 다 재활용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니? 라며 반문하는 모습입니다.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 구겐하임에 전시된 이 작품은 관객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구겐하임미술관
다음 질문. 또 다른 ‘카텔란 스캔들’의 서막. 2016년 작품이자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에 관한 해프닝도 물었습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이 구겐하임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이 미술관 큐레이터는 반 고흐 대신 ‘아메리카’를 트럼프에게 제안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내비친 아주 도발적인 제안이었고 이것 역시 굉장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 당신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2016)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이 반 고흐 작품을 요구했을 때,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대신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낸시는 아주 날카로운 정신을 가진 훌륭한 큐레이터다. 또 그녀는 큐레이터로서 구겐하임 소장품 무엇이든 나와 상의 없이 외부에 대여해 줄 권리가 있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
저는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잘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는데, 카텔란은 즉답은 피했습니다. 당시 결정에 자신은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면서요… 그럼에도 백악관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겠다는 답으로 대신했네요.
선 넘기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듯한 카텔란의 초상 사진. 사진: 리움미술관 제공
그 다음 질문은 리움미술관 전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미학적으로 열심히 감상하기보다 그냥 슬쩍 보고 ‘이렇게 선을 넘네’라는 단상의 연속이죠.
― 당신은 사람들을 도발하는 것을 좋아하나? 미술계 사람들도? 그렇다면 왜 그런가?
“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지닌 내 성향이 작용한다고 본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정해진 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그것에 언제나 저항하려고 한다.
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그랬고,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가 그랬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만한 파워를 가지길 바란다.
과거에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성에 대해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언제나 권위와 맞서는 과정에 있으며, 아픈 곳을 긁어주는 손톱이다.“
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도발과 전쟁에 관한 비유였습니다. 선을 넘는 도발이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감수하더라도 예술이 이런 힘을 갖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돼?’라고 느꼈던 대목과 연결되는 관점이지요. 호불호는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 당신은 작품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왜 스스로를 작품의 플레이어로 결정했나?
“어떤 일을 처음 할 때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엔 내 얼굴을 넣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 자화성은 굉장히 직설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몰랐던 부분을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고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화상은 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 모든 작가들도 자화상을 그리며 이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화상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제(topos)다.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찰스 디킨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시니컬한 갑옷 속 숨은 고백…‘나는 죽음이 두렵다’
― 당신의 전시는 미술관을 잘 만들어진 소극(farce)이 펼쳐지는 극장, 혹은 어둡고 우울한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리움 미술관의 공간을 어떻게 접근했나?
“그 작품들은 어디에 전시되든 공간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장 누벨이 만든 미술관 공간은 무척 아름답다. 분명 도전적인 장소였지만, 공간 일부가 내게는 지하철역을 연상케 했다. 또 전시관은 상점의 쇼윈도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간에 맞춰 작품을 약간 수정했고, 건축가가 만든 공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 그런데 전시 제목은 ‘WE’이다. 이 제목은 냉소적 의미인가 아니면 긍정적 의미인가?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THEY)’로 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 완전한 냉소적 의미가 표현됐을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은 정해져 있되 그 앞장은 알아서 써내려가야 하는 한 권의 책 아닌가?“
저는 이 답변이 재밌었습니다. 전시장에 가면 정말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전시 제목이 ‘WE’여서 조금 헷갈렸거든요. 이 어두운 냉소가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걸까(냉소적 의미), 아니면 이런 어두움도 스스로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말하는 걸까(긍정적 의미) 궁금했습니다.
카텔란은 전시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하고도 싶었다며, 냉소의 끝판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답을 해주었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풀어서 말하면 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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