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호기심을 소중히, 겉모습은 하찮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1일 03시 00분


◇파인먼 평전/제임스 글릭 지음·양병찬, 김민수 옮김/756쪽·4만4000원·동아시아

물을 내뿜으며 빙빙 도는 스프링클러를 물속에 집어넣고 물을 내뿜는 대신 빨아들이게 하면 어떻게 될까? 역방향으로 회전할까? 아니면 같은 방향으로?

답은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쉬운 것 같아도 과거 수준급 학자들도 꽤 의견이 갈렸던 문제라고 한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강의조교 시절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은 생각만으로는 결론을 못 내리자 슬쩍 실험을 해보려다가 한 연구소 실험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출입금지를 당했다. ‘괴짜 천재’ 파인먼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다.

양자역학과 전자기학을 통합하는 이론을 완성했고,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의 대표적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파인먼의 어린 시절 아버지 멜빌은 ‘호기심을 소중히, 겉모습은 하찮게’ 여기라고 가르쳤다. 어려운 용어나 포장에는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든 언어로 저 새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란다. …저 새를 관찰하고 새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자는 거야.” 이런 가르침 속에서 파인먼은 편견 없이 지식을 추구하는 법을 체득하며 자라났다.

파인먼은 독창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난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소집된 물리학자들이 한 달 동안 쩔쩔 매던 문제를 단숨에 풀었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말년에 희소암을 앓던 파인먼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조사위원을 맡아 원인 규명에 애쓰기도 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사고 원인이 된 부품(오링)에 대한 증언을 회피하자, 워싱턴 관공서 주변 철물점에서 구한 재료로 오링의 탄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TV 카메라 앞에서 실험해 보이기도 했다.

‘카오스’ ‘인포메이션’ 등을 낸 저명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파인먼은 겉치레와 인습, 돌팔이, 위선을 증오했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 소년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양자역학 등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부분을 건너뛰다 보면 ‘천재’라는 말 뒤에 가려진 파인먼의 진짜 비범함과 인간적 면모가 보인다.

#파인먼 평전#물리학자#파인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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