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한 두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세계관이 너무나도 다르다면 어떨까’란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2018년 컬트 종교와 테러를 다룬 첫 장편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문학과지성사·사진)로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권오경 작가는 11일 줌(화상회의)으로 진행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종교를 소재로 소설을 구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 이 소설은 광신적 사이비 종교 ‘제자’(弟子)의 교주 ‘존 릴’, 어머니의 죽음 후 자책하며 방황하다 이 종교에 빠지는 ‘피비’, 신학대를 관둔 뒤 우연히 사랑하게 된 피비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 막으려는 ‘윌’ 등 세 인물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권 작가는 이를 통해 ‘영원한 삶’을 믿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지닌 세계관의 간극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때 저는 목사를 꿈꿨지만 17살 때쯤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관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신념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 영원히 살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린 결국 흙, 먼지 알갱이, 우주가 될 것’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넘어간 게 제게는 충격이자, 크나큰 슬픔이었습니다.”
신앙을 잃어 본 그의 경험은 주인공들의 심리적 묘사에 반영됐다. 윌이 “내가 그리스도에게 신물이 났던 까닭은 오히려 그분을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 속에서 권 작가과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윌’은 극단주의 종교의 본질엔 안락과 구원을 찾아헤매는 인간의 결핍과 외로움이 있다는 걸 드러낸다.
10대 때부터 작가의 머릿속을 맴돈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문장이 살아있고, 더 이상 가꾸고 싶은 생각이 안들 때 완성됐다고 느꼈다”며 “힘들 땐 세상에 혼자 남은 듯 공허하고 외로웠던 ‘17살의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의 전부였던 신앙은 문학으로 대체됐다. “문학은 제 마음과 정신이 있는 곳입니다. 이상적인 형태의 책이 존재한다고 믿고, 집필을 통해 그걸 찾아나가죠.”
소설 속엔 이산(디아스포라)문학적 요소도 곳곳에 묻어난다. 피비가 “나는 이민자잖아. 이민자들은 심리 상담을 믿지 않아. 내가 그런 걸 한다고 하면 주위 한국인들이 의지박약이라고 볼 거야. 다른 인종 집단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라고 말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2세인 권 작가는 현실적 이유로 예일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격려 덕분에 브루클린 칼리지에 예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었다.
그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꼽았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들 중에 특정 문단은 족히 수 백 번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황무지나 다름없던 영미권 문학에서 앞선 길을 개척한 이창래, 이민진 등 선배 작가들도 언급했다.
인센디어리스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제작한 코고나다 감독이 맡아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권 작가는 소설이 발표된 후 큰 호응을 얻고, 드라마화까지 결정된 과정을 말하며 “지난 5년간 한국 콘텐츠들은 아시아계 콘텐츠는 인기가 없다는 할리우드의 인식이 얼마나 틀렸는지 잘 증명해왔다”고 강조했다.
7년째 집필 중인 그의 차기작은 발레리나와 사진작가, 두 여성의 야망과 욕구를 다룬 이야기다. 그는 “여성은 늘 누군가의 엄마, 딸, 자매 등이 되길 강요받았다”며 “왜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선 장려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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