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집트에 가보는 게 우리 엄마 꿈이거든요. 그 꿈을 이뤄주려고 제가 예매했어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리는 특별전 ‘이집트 미라전: 부활을 위한 여정’이 열리고 있는 11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경기 화성시에 사는 길민주 씨(26)는 어머니 오경숙 씨(57)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일주일 전 인터넷으로 전시 티켓 2장을 예매했다. 그러고도 인파가 몰려 2시간 반 동안 전시장 위층에 있는 대기실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렸다. 그토록 기다렸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길 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오길 잘했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어머니 오 씨는 “딸 덕분에 엄마가 이집트 구경을 해보네”라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12월 15일 개막한 ‘이집트 미라전’이 11일 관람객 10만3106명을 돌파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전시장은 기원전 722년~기원전 655년경 만들어진 ‘호르의 외관’이 놓여 있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붐볐다. 티켓을 예매한 뒤 최소 2시간을 기다려야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전문성에 더해 어린이 눈높이 맞춰 남녀노소 인기
이집트 사후세계관을 다룬 이번 전시는 자칫 복잡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 역사를 남녀노소 모두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만5000점이 넘는 이집트 컬렉션을 소장한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박물관의 유물 중에서 미라 관 15점 등으로 엄선된 유물 250여 점을 선보였다.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미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최신 연구 성과도 공개해 전문성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고대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풀이해주는 실감영상으로 어린이의 눈높이도 맞췄다. 고대 이집트 역사를 집중 조명한 전시인데도 어린이·청소년 관람객 수가 3만6097명에 이른 이유다.
이날 전시장에 마련된 이집트 피라미드 실감영상을 보던 노건우 군(9)은 “진짜 이집트에 놀러 가서 역사를 본 것 같다”며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닥에 앉아 한참 동안 영상을 보던 노 군은 “원래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집트 역사를 이렇게 자세히 공부하는 건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고대 이집트 신화를 풀어낸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화면 앞에는 2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모여 있었다. 전지원 양(10)은 어머니 윤진선 씨(36)가 “다른 유물 보러 가자”고 해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5분간 영상을 다 본 뒤에야 자리를 옮긴 전 양은 “엄마, 옛날 이집트에는 왕을 대신해서 신전을 돌봐주던 사람들이 있었대!”라며 신관(神官)의 의미를 풀어 설명했다. 어머니 윤 씨는 “복잡한 이집트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해주니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웃었다.
●이집트 다녀온 이들도 “명품 전시” 찬사
특히 고대 이집트 고위층의 목관 10점이 둥근 원을 그리며 세워진 3부는 실제 이집트에 다녀온 이들도 “명품”으로 꼽는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날 3부 전시장 중앙에 놓인 ‘하이트엠헤트의 관’ 앞에 멈춰 선 최지혜 씨(42)는 목관 위에 새겨진 문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원전 722년~332년경 후기왕조시대에 만들어진 이 목관 표면에는 사자를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주문은 물론 화려한 꽃무늬 장식이 가득했다. 최 씨는 “20년 전 항공사 직원으로 일할 때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서 이런 목관들을 봤다”며 “유물 수는 현지 박물관이 더 많지만 예술적인 전시 구성과 상세한 설명은 ‘이집트 미라전’이 더 훌륭하다”고 평했다.
이날 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한성길 씨(83) 역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1985년 이집트에 방문해 미라와 목관을 본 적 있다. 한 씨는 “고대 이집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며 “미라를 만드는 방법까지 설명해주는 전시 내용은 현지보다 더 알차다”고 강조했다. 그는 “딸이 ‘아빠 따라 오길 잘했다’고 한다. 이집트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며 웃었다. 3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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