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트’ 단독주연 진선규
올림픽 金 따고도 판정시비에 은퇴
복싱 박시헌 선수 실화 담담히 그려
“실패해도 또 일어서는 내 모습 같아”
“제 얼굴, 제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는 영화 개봉은 처음이라 떨리고 두려웠어요.”
13년 무명 생활 끝에 영화 ‘범죄도시’(2017년)의 강렬한 조선족 위성락 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진선규(46)가 데뷔 19년 만에 생애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판정 시비에 휘말리며 은퇴한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가 오합지졸 복싱부 학생들을 가르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카운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58)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22일 개봉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난 진선규는 “시사회 날 문자로 박시헌 선수에게 정말 떨린다고 했더니 ‘대한민국 최고인 진선규가 링에 오르는데 그렇게 떨고 있으면 옆에 있는 선수들이 더 떨지 않을까요. 힘내세요’라고 하셔서 울컥했다”며 “배우로서 중요한 지점에 선 만큼 무대 인사 등 작품 관련 일정에 신나게 임하겠다”고 했다.
카운트에서 시헌(진선규)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부러진 손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지만 결승에서 상대인 미국 선수에게 확연히 밀린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패배를 직감했지만 심판이 들어올린 건 그의 손이었다.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의 복싱협회 입김으로 판정승을 한 것. 그는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이로 인해 공분을 사 원치 않게 은퇴를 하게 된다. 이 일이 있은 뒤 시헌은 마음이 망가진다. 금메달을 바라보며 “은메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눈물짓는다.
고교 체육교사가 된 시헌은 어느 날 억지로 참관하게 된 고교 복싱 대회에서 승부 조작으로 기권패를 당한 윤우(성유빈)를 만난다. 반대 상황이긴 하지만 힘 있는 자들의 체스판 말이 된 윤우에게 과거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시헌은 윤우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진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결심한다. 시헌은 복싱부를 만들고 오합지졸 학생들을 모은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진선규 특유의 코믹 연기가 탄탄한 이야기에 스며들어 웃음과 감동을 모두 잡았다.
진선규는 “시헌은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매우 비슷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에게서 힘을 얻고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며 후배들과 같이 꿈을 이뤄 나가는 모습,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시헌이 아니라 진선규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시헌 선수는 평생 아픈 꼬리표였던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데 걱정이 컸다고 한다. 진선규는 “박시헌 선수 본인은 차라리 은메달이었으면 정말 사랑하는 복싱을 계속 하면서 행복하게 꿈을 꾸며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큰 울림을 줬다”고 말했다. 박 선수는 현재 제주 서귀포시청 복싱 감독을 맡고 있다. 영화를 본 그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아픔을 잘 풀어내고 씻겨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그 일 자체가 마음이 아파서 아직 영화를 못 봤다고 한다.
취미가 복싱인 진선규는 수준급 복싱 실력을 지녔다. 촬영 두 달 전부터는 복싱부원 역을 맡은 성유빈 장동주(환주 역) 등 후배 배우들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4∼5시간씩 훈련했다.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잊지 않은 그는 촬영 때마다 모든 단역 배우들과 인사하고, 촬영 전 합을 맞췄다.
“누군가는 이 작품으로 ‘진선규도 주인공 할 수 있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안 돼, 걔는 그냥 조연이야’라고 할 수도 있어요. 힘든 상황이 닥쳐도 결국 이겨낸 박시헌 선수처럼 인간 진선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