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알려진 ‘임천가화’ 日서 찾아
“설법하여 재물 얻고 불법 희롱”… 사찰-승려의 부정한 모습 지적
“유교-불교의 이치는 동일하다”… 유-불-도 아우른 사상도 엿보여
“슬프다, 말법(末法·불법이 쇠퇴해 수행자나 깨달음을 이루는 이가 없는 시기)의 승려는 제어하기가 어렵구나. 속인에게 설법하여 재물을 얻고, 불법을 희롱하여 살기를 추구한다. 오만무도하여 큰 불법이 깊고 넓음을 모르고, 부처 마음이 크고 광대함을 깨우치지 못하여 살아서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살다가 죽어서는 곤궁한 귀신이 되니 장차 무엇을 하려 하는가! 자포자기한 자가 아닌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조선 초기 불교의 타락을 비판한 저술 ‘임천가화(林泉佳話)’가 일본의 공문서관에서 발견됐다. 제목만 전해온 이 책이 실제 확인된 건 처음이다.
고전문학자인 차충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19년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內閣文庫)에서 임천가화가 별집으로 포함된 매월당집(梅月堂集) 필사본 전권(총 9책 19권)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이를 3년여에 걸쳐 번역, 분석한 논문을 지난달 27일 한국한문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은 1453년 세조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승려가 돼 일생을 방랑하며 살았다. 국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유교·불교·도교를 넘나든 사상가로 유명하다. 그의 당대 불교에 대한 시각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확인된 것이다. 책 제목은 ‘자연 속에 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차 교수에 따르면 임천가화에 실린 글 70화 중에는 불교의 본질을 논하는 글과 함께 사찰, 승려의 부정한 모습이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다. 김시습은 “어떤 중은 법회에 참여하면서 때가 많아 냄새를 풍기고 땀에 젖어 이와 서캐가 옷깃에 버글거린다. 심한 자는 가는 비단으로 납의(衲衣)를 짓고서 안에는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입어 화려함을 다투어 과시한다”고 비판했다.
책에서는 유·불·도를 아우른 김시습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무릇 도(道)라고 하는 것은 천지를 담아도 남음이 있고, 만유(萬有·모든 현상)를 포괄하여도 형태가 없다. 만상(萬像)을 만들고 무리를 짓지 않으니 오묘한 근원은 비어서 막힘이 없고, 고요하면서 여러 일에 드러난다. 어떤 사업에 적용하여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를 깨달아서 무위(無爲)에 이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있다.” 차 교수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근본 이치가 동일하다고 강조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임천가화는 조선 중기 학자 김휴(1597∼1638)가 1637년 남긴 도서해제목록집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등을 통해 제목과 머리말만 전해 왔다. 지금껏 알려진 매월당집 완질은 1583년 선조의 명에 따라 간행된 경진자본(일본 호사·蓬左문고 소장)이 유일했지만 거기에도 임천가화는 실려 있지 않았다. 차 교수는 “관이 발행한 매월당집엔 유교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불교와 관련된 임천가화를 제외시켰을 것”이라며 “이번에 발견한 매월당집 필사본은 표지에 찍힌 에도 막부 직할 교육기관의 인장으로 보아 늦어도 19세기 초에는 일본에 전해진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호사문고본에는 빠져 있는 세조 찬양 시문도 눈에 띈다. ‘신역연경(新譯蓮經)’이라는 시 뒷부분에는 “우리 전하처럼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역대의 제왕보다 초월하면서…”라며 세조를 극찬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른 시 ‘망경운백관치하(望卿雲百官致賀)’ 역시 세조의 성덕과 불교 숭상을 찬미했다. 차 교수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김시습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면서도 “당대 제왕과 신하의 절대적 관계를 고려해보면 그가 자신의 속마음과 관계없이 겉으로는 세조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시습은 1463년과 1465년 법화경 언해, 원각사낙성회 등 세조의 불교 관련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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