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악화되며 작업 전면 중단한
‘이어령 전집’ 1주기 앞두고 출간
공간의 기호학-문화코드 등 실려
‘지인 72명 추모글’ 에세이도 펴내
《‘저항의 문학’(1959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
출간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대표작들이다.
이 전 장관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고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이어령 전집’(전 34종 24권·21세기북스·사진)이 23일 출간된다.
문학사상사가 2006년 완간한 ‘이어령 라이브러리’ 전집 시리즈를 정본으로 당시 빠졌던 ‘공간의 기호학’(문학평론), ‘문화코드’(문화비평) 등 3개 작품이 추가됐다.》
고인의 부인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21일 서면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만진(직접 작업한) 마지막 전집이다. 그런데 전집이 나오는 걸 선생님이 못 보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이 전 장관은 일생 동안 총 185권의 책을 남겼다. 소설, 희곡, 평론, 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썼다. 이번 전집에는 그중 고인이 2014∼2015년 2년간 손수 고르고 다듬은 것이 실렸다. 강 관장은 “‘공간의 기호학’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이 선생이 8년 가까이 붙잡고 탐구하던 작품들”이라며 “‘저항의 문학’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20대의 첫 평론집과 에세이여서 아마 제일 애착이 갔을 것”이라고 했다.
고인은 1956년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주목을 받은 뒤 첫 문학평론집 ‘저항의 문학’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한국 문화를 분석한 에세이로 영어판과 일본어판, 러시아어판, 중국어판까지 포함하면 반세기 동안 2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이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쓴 문화비평집이다. “창조하는 시간은 절대 고독을 요구하잖아요. 이어령 선생은 서재가 있는데도 더 고독해지고 싶어 10년에 한 번쯤은 외국에 가 자취하며 글을 썼어요. 전화가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 거죠. 그렇게 나가 있으면 꼭 좋은 책이 나와요. ‘축소지향의 일본인’처럼 40년간 계속 독자를 지니는 책요.”(강 관장)
이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나기 8년 전부터 시작한 전집 발간 작업은 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전면 중단됐다. 다시 작업이 이어진 건 지난해 3월부터다. 강 관장은 반년 가까이 밤낮없이 원고를 들여다보며 ‘결정판’이 될 이어령 전집의 교정을 손수 봤다. 눈 밝기로 이름난 소설가 김도언, 구경미 등도 교정교열 작업에 참여했다. 강 관장은 “선생님(이 전 장관)이 안 계시니 출판사에서 다 고쳐 온 마지막 교정지를 살펴봤을 뿐”이라고 했다.
전집과 함께 발간되는 이어령 추모 에세이 ‘신명의 꽃으로 돌아오소서’에는 이 전 장관의 지인 72명의 추모 글이 담겼다. 강 관장은 “용비어천가같이 칭찬만 하는 폐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일을 했거나 사건을 겪은 분들께 글을 청탁했다”며 “우리가 살아온 한 시대의 연대기가 될 것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김병종 화백(서울대 명예교수)은 고인이 죽음에 가까울 때 남긴 말을 글로 적었다. “나는 가도 그 생명의 ‘밈(meme)’은 사방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문자를 가진 자의 행복이지요.”
영인문학관은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고인의 1주기 추모식을 연다. 고인의 애장품, 육필원고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도 이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님을 일반인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공감대를 탐색해 새로운 언어로 제시해준 크리에이터로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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