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외노의원)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무료 병원이다.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2011년부터 공중보건의로 이곳에서 3년간 일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환자들은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고통과 통증을 호소했다. 저자는 이들을 진료하며 각각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과 이주 노동자로 겪는 차별과 낙인이 그들이 호소하는 증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족(중국동포) 환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수많은 증상을 호소한다. 저자는 인류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그 원인을 찾는다. 중국 문화대혁명기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겪으며 생긴 트라우마가 이주 노동이라는 비슷한 현실 속에서 재현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이 호소하는 고통과 통증은 어쩌면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질환에 얽힌 삶의 서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한 네팔 출신 남성은 음주로 인한 심부전을 앓았다.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낙인으로 직장에서 해고될까 두려워하며 한사코 입원을 거부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용 불안에 그 역시 시달리고 있었다. 뒤늦게 환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저자는 책을 통해 “질병에 붙어 있는 은유와 낙인까지 함께 짐을 지워 미안하다”고 말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