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잔치 열린 속 꽉찬 울진여행
후포항서 3년만에 대게축제 한창… 살 통통 박달대게-홍게 침샘 자극
스카이워커 올라 바다품 안기거나 죽변 하트바위 배경 인생샷 찰칵
봄철 은어떼 올라오는 왕피천따라 산-바다 아우른 청정계곡 걷는 맛도
《경북 울진은 지금 해산물 잔치가 한창이다. 살이 오른 울진대게와 붉은대게(홍게)가 항구를 가득 채우고 있고, 봄이 되면서 고향인 울진 왕피천으로 회귀하려는 은어 떼도 들썩거리고 있다. 어디 맛뿐이랴. 바다 위를 누비는 스카이워크와 스카이레일, 케이블카 등은 울진의 해안 절경을 즐기는 멋이 되고 있다.》
조선 개국 참여를 거부하고 절의를 지킨 ‘고려 삼은(三隱)’ 중 한 명인 목은 이색(1328∼1396)은 미식가였다.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을 받았던 그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사족을 못 썼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입과 배만 생각하니/먹을 것만 찾는다는 평을 매양 받을밖에/서해의 등 푸른 생선이야 얼마든지 구하지만/동해의 대게는 어찌나 맛보기 힘든지.”(‘잔생·殘生’·이상현 번역)
이색은 맨날 먹을 것만 밝힌다는 주위의 눈총에도 동해산 대게가 그립다는 시를 남겼다. 이색은 동해안의 외가(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먹었던 대게 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먹방 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위와 함께 경남 밀양을 방문해서는 밀양강의 유명한 은어 맛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홍수로 물이 불어나 은어를 잡을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채 “눈앞에 삼삼한 은어(忽得銀魚森在眼)”라는 시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가 기억해낸 은어 역시 어린 시절 동해안에서 맛본 그 물고기였을 것이다. 동해산 은어로는 매년 봄이 오면 왕피천(경북 울진군)으로 떼 지어 거슬러 올라오는 ‘왕피천 은어’가 유명하다. 왕피천 은어는 독특한 수박 향기를 지니고 있으면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미식가 이색이 군침을 흘렸을 만하다.
지금 경북 울진은 바다에서는 한창 살이 오른 대게 떼로 북적거리고, 왕피천 계곡에서는 귀향하는 은어 떼로 분주하다. 때맞춰 울진군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대게 축제를 3년 만에 재개했다. 26일까지 울진군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다.
이곳에서 대게 축제가 열리는 이유가 있다. 울진 왕돌초는 대표적인 대게 산지다.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km가량 떨어진 왕돌초는 여의도 땅 2배 크기의 광활한 수중 암초 지대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울진대게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지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는 2월부터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대게의 ‘대’가 큰 대(大) 자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8개 다리가 마른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 중에서도 최상품은 박달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살이 단단하게 찬 최상급 대게다. 배 한 척당 하루 2, 3마리만 낚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어서 경매가도 한 마리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만만치 않은 대게 값이 부담스럽다면 홍게도 좋다. 살이 잘 오른 홍게는 대게 못지않은 맛을 낸다. 생김새가 대게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진하고 짠맛이 강한데, 대게 대신 이 맛을 찾는 이들도 많다.
대게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은 국내 최대의 대게잡이 항구여서 어시장 볼거리도 적잖다. 어판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연근해에서 잡아온 대게 경매장이 선다. 어판장 바닥 가득 대게가 늘어선 광경도 이색적이거니와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서 활기찬 삶의 현장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어판장 인근 식당가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대게 찜통은 관광객의 침샘을 자극한다.
●바다 위를 걸어간다
대게 축제가 펼쳐지는 후포항 인근에는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있다. 스카이워크는 등기산 공원 출렁다리 건너 갓바위 공원에서 바다 위로 뻗은 해상교량이다. 바다에서 20m 높이로 15t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투명한 강화유리가 설치돼 있다. 57m 길이로 바다로 뻗어 있는 투명 유리를 걷다 보면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 든다. 비가 많이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은 휴장한다. 바로 옆의 갓바위는 바다 위로 솟은 기암괴석과 파도가 부딪쳐 빚어내는 하얀 포말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울진 바다를 더 즐기고 싶다면 울진 해안도로와 죽변 스카이레일을 추천한다. 후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의 죽변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울진에서 가장 멋있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또 죽변 해안의 스카이레일은 깊고 푸른 바다와 해안 갯바위 절경을 가장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코스다. 약 10m 높이로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궤도 차량을 타는 스카이레일은 죽변등대 아래에서 후정해수욕장까지 4.8km 이어진다. 현재는 죽변항(죽변 승차장)에서 출발해 하트해변 정차장을 지나 봉수항 정차장에서 유턴하는 A코스(2.8km)만 운행되고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스카이레일을 타고 가면 죽변의 명물인 하트 모양 해안 바위, 인기 드라마 ‘폭풍 속으로’를 촬영했던 죽변 드라마 세트장(언덕 위 붉은 지붕의 이층집), 울진 사람들이 동해 용왕을 모신 용왕전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죽변 용왕전은 울진 선주들과 원로들이 직접 제례를 챙기는 곳으로 매우 영험하다고 소문나 있는데, 모노레일에서는 순식간에 보였다 사라진다.
스카이레일 종점인 후정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국립해양과학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해양 과학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바닷속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해중(海中)전망대가 있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400m쯤 떨어진 곳에 들어선 해중전망대는 8층 높이의 거대한 구조물인데, 해수면 아래 수심 7m의 바닷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은어의 고향’ 왕피천에서
울진은 바다뿐 아니라 멋진 계곡들로도 유명하다. 그중 국내 최대 규모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이 대표적이다. 왕피천(65.9km)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금강송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하천을 따라 깊은 산과 기기묘묘한 절벽과 바위들이 펼쳐지는 이곳에서는 하늘다람쥐, 산양, 수달 등 포유류 14종, 조류 60여 종, 양서류·파충류 23종이 서식한다. 물론 동해로 떠났다 돌아오는 은어도 만날 수 있다.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2013년 환경부로부터 전국 12곳 ‘생태관광지역’ 중 하나로 선정됐다.
특히 왕피천생태탐방로는 트레킹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인 만큼 왕피천 생태탐방은 사전 예약 후 가이드와 동행하는 것이 필수다. 수·목·일요일은 당일 코스, 금·토요일은 당일 또는 1박 2일이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워낙 길다 보니 코스는 전체 다섯 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2구간인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굴구지마을은 농촌체험 휴양마을로 유명하다.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고개를 넘어야 마을이 나타난다고 해서 구고동 또는 굴구지로 불리는 오지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왕피천 입구에 나무를 깎아 만든 은어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이곳이 ‘왕피천 은어’의 고향임을 알리고 있다. 3, 4월이면 은어 떼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왕피천 트레킹을 할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문명의 이기인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왕피천 하구에 위치한 왕피천케이블카를 타면 왕피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청명한 동해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과 해맞이 공원으로 이어지는 짧은 산책 코스까지 준비돼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