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은 제국주의라는 ‘야만’의 문명을 딛고 민주주의라는 새 문명을 세웠습니다. ‘야만’에 대항할 때 우리가 가진 걸 지켜낼 수 있는 법이죠.”
최근 국내에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비채)를 출간한 대만의 ‘국민작가’ 우밍이 국립동화대 교수(52)는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 식민 통치 시기인 20세기 초 대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세계의 독자와 공명하는 건 우리가 전쟁이 주는 공포, 고통, 안타까움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2018년 대만에서 처음 출간된 ‘도둑맞은 자전거’는 호주, 일본, 스웨덴 등 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르며 대만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은 주인공 ‘청’이 1993년 타이베이의 대형 상가 중화상창이 철거된 다음날 실종된 아버지와 함께 자취를 감춘 자전거의 행방을 수소문하면서 드러나는 전쟁의 참상을 그린다. 식민 통치기 일본군에 복무한 대만인들은 종전 후 득세한 중국군에게 색출될까 두려워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 전쟁의 시대가 남긴 아픔이 소설 속 다양한 인물의 서사로 펼쳐진다.
작가가 자전거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건 전작인 ‘수면의 항로’(2007년)와 관련이 있다. 이 소설 역시 일본 통치기에 전투기 공장으로 징집당한 10대 초반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 ‘싼랑’이 마지막에 자전거를 세워두면서 끝나는데, 독자 한 분이 그 자전거는 어떻게 되느냐는 메일을 보내주셨죠.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답신을 보낸 뒤 끊임없는 조사를 거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도둑맞은 자전거’를 썼습니다.”(우 작가)
작가는 수년간 직접 고물 자전거를 수집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면서 스무대가 넘는 고물 자전거를 수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한 건물에 10년 넘게 방치된 자전거의 사연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전거의 역사가 소설의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게 소설은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자전거 수집가’가 되어 집필한 이번 소설은 오래된 자전거에 배어있는 사람들의 발자취, 그중 전쟁사를 들여다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본군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 하에 동남아 침공 작전을 벌이면서 말레이반도 밀림 지대의 전투를 위해 현지 주민들 자전거까지 몰수해 편성한 ‘은륜(銀輪·자전거)부대’의 역사가 소설에 녹아있다.
작가는 코끼리의 시선으로 전쟁을 묘사한 대목을 소설의 가장 특별한 부분으로 꼽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도구로 쓰였던 코끼리가 타이베이 동물원으로 돌아와 전쟁터에서 함께 전쟁을 치렀던 인간을 만나 알아보는 대목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세계문학강독 수업을 하는 그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등 작품을 학생들과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며 “조남주 신경숙 작가와 이창동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 집필 중인 차기작은 대만 원주민과 시멘트 공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환상, 신화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 ‘해풍주점’(가제)이다. 기후변화를 소재로 프랑스 문학상인 리브르 앵쉴레르상을 수상한 소설 ‘복안인’(2014년)은 내년 국내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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