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9일 영국 웨일스의 한 학교 운동장. 보육원에서 막 도망쳐 나온 두 10대 소년 벤과 브라이언이 있다. 벤은 운동장에 쌓여 있는 부서진 가구로 장난을 치다가 의자를 내리쳐 브라이언을 살해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벤에게 교도소는 ‘지옥’이었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 안에서 학업에 열중해 형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감옥의 변호사’가 되어 재소자들을 도왔다. 명성을 얻게 된 그는 가석방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거부했다. 2012년 47세가 돼 출소한 그는 절망했다. “교도소에서는 제 자리가 어디쯤인지 알았어요. 지금 전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 완전히 무너졌어요.”
저자가 인간의 지위 욕구를 설명하기 위해 든 사례다. 교도소에서 변호사라는 독보적 지위를 누린 그가 자유를 얻고도 불행에 빠진 건 그를 우쭐하게 만들어줬던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 인간은 행복이나 자유 등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저자는 실제 우리 내면이 원하는 것은 ‘남들보다 더 나은 지위’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뇌과학, 심리학, 인류학 등을 오가며 인간의 행동 메커니즘을 ‘지위를 얻기 위한 게임’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저자는 지위 욕구의 근원을 수만 년 전 부족 단위로 수렵·채집을 하며 산 인류의 역사에서 찾는다. 오래전 삶의 양식에 맞춰 진화해온 우리 뇌는 예나 지금이나 높은 지위를 가질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낳고 풍부한 영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이야기 속 ‘영웅’이라고 스스로를 의식한다. 신경과학자들이 ‘해석자 모듈’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자각, 기억 등을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위 욕구를 채우며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원대한 삶의 가치를 지향하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다. 저자는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게임의 존재 자체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게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위 욕구의 노예가 된 극단적 사례도 다뤘다. 연쇄살인마 3명과 아돌프 히틀러다. 연쇄살인범을 연구한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이 유년기에 가정과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모욕감을 겪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욕감은 지위와 지위를 얻는 능력을 박탈당한 상태다. 저자에 따르면 살인범들은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자신이 박탈당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범행을 저지른다.
저자는 같은 맥락에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바라본다. 히틀러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의 모욕감을 이용해 지위 게임을 벌여 국민을 선동했다는 분석이다. 전쟁 전 부유하고 발전했던 국가인 독일은 패전 후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으며 강대국 서열에서 밀려났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지위의 상징은 늘어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부상으로 사람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경쟁한다. 더 나은 지위를 얻기 위해 계속 발버둥쳐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누구도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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