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절교 선언한 절친, 이유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8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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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9개 부문 노미네이트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파우릭(왼쪽)이 친구 콜름에게 절교하자는 이유를 묻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오후 2시면 맥주를 마시며 늘 같이 시간을 보내던 절친이 하루아침에 절교를 통보했다. “그냥 이제 네가 지겹다”는 말과 함께.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자꾸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자네가 싫다”는 것 뿐.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또 다가가자 “한번 만 더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잘라서 보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받는다. 두 남자의 관계, 끝은 어딜까?

15일 개봉하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에 사는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밴시’는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어떤 이의 죽음을 미리 알고 슬피 우는 초자연적 존재다.

1923년 아일랜드 본섬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지만 이니셰린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다. 파우릭의 일과는 소를 몰고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과 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고 나서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 콜름과 펍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이 낙이다.

어느 날 콜름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때부터 파우릭의 하루는 ‘대체 왜?’라는 의문에 갇혀 엉망진창이 된다. 콜름은 파우릭을 아끼는 마음은 남았지만 그와 더 이상 의미 없는 농담을 나누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콜름은 파우릭이 계속 곁을 맴돌자 화가 나 협박대로 그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던져버린다. 콜름의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파우릭이 아끼는 당나귀 ‘제니’가 죽게 되고, 분노한 파우릭은 콜름의 집을 불태워 버린다. 둘도 없던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싸움은 계속된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파우릭이 당나귀 제니와 동네를 걷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절교하자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보내다니, 콜름의 행동만을 보면 이야기는 괴상하고 황당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배경과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의 대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의 지배를 인정하는 가운데 자치권을 얻어내자는 세력과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세력 사이의 충돌이었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이들은 서로를 지독히 미워하게 됐다. 서로를 물고 뜯다가 종국에는 무엇 때문에 충돌했는지도 불분명해졌다. 그리고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만 남았다. 파우릭과 콜름의 끝나지 않는 싸움과 닮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멍청하지만 다정한 파우릭과 후세에 무엇인가 남기는 일을 중요시 여기는 콜름을 통해 어떤 태도로 살지 돌아보게 한다. 영화와 어우러지는 아일랜드의 절경도 관람 포인트다.

영화는 호평을 받으며 영화제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주·조연배우 4명이 모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파우릭 역을 맡은 콜린 파렐은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 중 하나다. 그는 1월 열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마틴 맥도나는 이번 작품으로 ‘21세기의 셰익스피어’라는 명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맥도나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을 거머쥔 그는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다관왕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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