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기 중시한 종교개혁 운동… 교육 선진화 이끌며 인적자원 형성
근현대엔 공유 문화가 부 밑거름… 다양한 자료 통해 부의 기원 추적
◇부의 빅 히스토리/마크 코야마, 재러드 루빈 지음·유강은 옮김/408쪽·2만4800원·윌북
18세기 서구 유럽의 산업화를 이끈 건 어쩌면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1694∼1778)는 1755년부터 21년 동안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에 사는 지식인들과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혁신을 보상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서신 교환을 통해 싹텄다고 분석한다. 의회제의 정착, 교통망 발전, 증기기관의 발명….
이 같은 혁신들이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서구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천재적인 발상을 나누는 편지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두 저자는 ‘부(富)의 기원’을 추적한다. 2세기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94%는 하루 2달러(2016년 물가 기준) 이하를 쓰며 살았다. 2015년 그 비율은 10%로 줄었다. 20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세계를 경제 성장으로 이끌었을까. 저자들은 답을 찾기 위해 지리뿐 아니라 제도, 문화, 인구 등이 부와 빈곤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이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살핀 뒤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섬나라 영국은 18세기 운하와 철도 등 운송 인프라를 확충해 내수 운송 체계를 갖췄다. 내수 시장을 연결해 유럽 대륙과 연결돼 있지 않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 역시 철도망을 촘촘하게 건설해 멀리 떨어진 지역을 한데 묶고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확보했다. 철도망이 없었다면 1890년 미국의 총생산성은 25% 감소했을 것이란 최근의 연구 성과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타고난 지리적 운명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운송 인프라로 ‘지리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프로테스탄티즘 문화가 서구 유럽을 자본주의로 이끌었다’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주장도 반박한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노동윤리를 강조한 자본주의 정신은 존재했다는 것.
오히려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효과에 집중한다. 성경을 직접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중시한 덕분에 문해력이 향상돼 두꺼운 인적 자본이 구축됐다는 얘기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개신교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 부를 쌓았다. 경제 성장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종교개혁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선진화라는 분석이다.
부의 기원을 하나로 꼽을 수는 없지만 저자들은 근현대 경제를 성장시킨 핵심 요인으로 문화를 꼽는다. 21세기 산업을 지탱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어째서 미국에 몰려 있을까. 18세기 서구 유럽의 지식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생각을 공유했듯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유한다. 좋은 발상을 나누는 성장 문화가 혁신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사회경제학 논문과 보고서 550여 편을 참고한 탄탄한 데이터가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 복잡다단한 조건들이 촘촘히 담겼다. 저자들은 “과거의 청사진은 우리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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