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20인 ‘오늘날의 역사’ 질문
백인-남성 중심 전통 역사관 비판
가족-환경 등도 적극적으로 다뤄야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헬렌 카 등 지음·최파일 옮김/440쪽·2만3000원·까치
2013년 영화 ‘변호인’이 개봉되자 보수 진영에서는 주인공을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듬해 개봉된 ‘국제시장’은 반대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그들은 이 영화가 “독재 정권 치하의 산업화 시대를 미화했다”며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역사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생긴 논란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주류 역사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등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작품 속 허구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학계 전문가 20명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과거와의 대화를 새롭게 꾀한 책이다. 저자들은 백인, 남성, 이성애자, 서구권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기존 역사학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그동안 부차적으로 취급되던 가족사, 환경사, 여성사, 인간의 감정 등을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것이 역사 사실에 허구를 섞어 만들어진 영화, 드라마 등 예술일지라도. 대중의 적극적인 해석도 역사를 재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60여 년 전 E H 카가 던졌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확장판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 대화 소재도 늘고, 방식도 변하는 게 당연하니까. 더군다나 저자 중 한 명이 카의 증손녀인 헬렌 카니 말이다.
저자들은 이런 적극적인 역사 재구성으로 설사 역사 왜곡이 생기더라도 실제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논쟁을 통해 질문하고 조사하며, 어디까지 믿을 만한 내용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앞서 두 영화 모두 처음에는 각 진영으로부터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은 두 영화를 천만 영화 반열에 올렸고, ‘영화는 영화로 보자’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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