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모더니스트’ 이상의 일본어 詩 67년만에 재번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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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편 엮은 시선집 ‘영원한 가설’ 출간
“가능한 한 직역… 옛 어투도 바꿔”

1930년대 초 시인 이상이 일본어로 쓴 시 28편을 재번역한 시선집 ‘영원한 가설’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시절 화가를 꿈꿨던 이상이 미술반 습작실에서 붓을 들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1930년대 초 시인 이상이 일본어로 쓴 시 28편을 재번역한 시선집 ‘영원한 가설’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시절 화가를 꿈꿨던 이상이 미술반 습작실에서 붓을 들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모더니스트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이 작품 활동 초기 일본어로 쓴 시 28편을 다시 번역해 엮은 시선집 ‘영원한 가설’(읻다)이 최근 출간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던 이상은 1931∼1932년 건축 전문 잡지 ‘조선과 건축’ 만평란에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의 유희―’ 등의 시를 일본어로 연재했다.

과거에도 번역본이 있었지만 “21세기 언어로 한 해석과 번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김동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다시 번역했다. 1956년 문학평론가 임종국(1929∼1989)이 처음 번역해 ‘이상전집’(3권)으로 펴낸 지 67년 만이다.

김 교수는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번역 전집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주석 작업과 적극적 의역이 이뤄진 반면 이번 작업에서는 주석을 배제하고 일본어 시 원문을 면밀히 고증해 가능한 한 직역했다”고 밝혔다. 독자들이 번역의 틀에 갇히지 않고 시를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거 번역본은 일본어 세로쓰기 원문처럼 띄어쓰기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선 이상이 띄어쓰기 생략을 의도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당시 표기 관행을 따른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판단하에 오늘날 표기법처럼 띄어쓰기를 모두 살렸다.

옛 어투는 현대어로 바꿨다. 과거 번역본에서 “基督의貨幣는보기숭할지경으로貧弱하고해서”(‘두 사람…2…’ 중)는 “그리스도의 화폐는 볼품없을 정도로 빈약하여”로 번역했다. “慈善家로서의여자는한몫보아준心算이지만”(‘광녀의 고백’ 중)은 “자선가로서의 여자의 발벗고 나설 심산으로”로 바꿨다. “이러구려數字의COMBINATION을忘却하였던”(‘LE URINE’ 중)은 “숫자의 COMBINATION을 그럭저럭 망각하고 있었던”으로 어순을 바꿔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했다.

새로운 번역출간을 제안한 출판사 ‘읻다’의 김현우 대표는 “당시 문인 가운데 이중 언어(일본어, 조선어)로 시를 발표하며 일본 시인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준 이는 이상이 유일하다”며 “한국 근대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이상의 시가 오늘날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천재 모더니스트#이상#영원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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