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많은 예술가가 갖는 불안 중 하나가 아닐까. 작품은 한 끗 차이로 예술이 되거나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곤 한다. 작가가 남긴 건 소장가, 큐레이터, 평론가와 미술사가에 의해 사회 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16일 개막한 ‘그 너머―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 원계홍 화백(1923∼1980)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두 소장가, 김태섭 전 서울장신대 학장과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 덕분이었다.
전시장에서 17일 만난 김 전 학장은 1989년 부동산중개소의 소개로 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원 화백의 집에서 우연히 작품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원 화백의 작품을 처음 봤지만 한눈에 반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거금을 들여 집과 작품을 사들였다.
그는 “작품에 눈이 멀어 포로가 됐던 것 같다”며 “1991년에야 잔금을 치렀고 한때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한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가 넘겨받은 작품은 약 200점으로, 작품의 가격은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과 맞먹었다.
윤 회장은 1984년 크라운제과 대표 시절 처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접했다. 그도 작품 전체를 인수하고 싶었지만 당시 원 화백의 부인이 남편의 흔적을 보내길 망설였다. 윤 회장은 이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프레임도 없이 그림 수백 점이 LP판처럼 쌓여 있는데, 그 사이에 원 화백의 그림이 있어 참 슬펐습니다.”
이후 생각날 때마다 원 화백에 대해 검색해 보던 윤 회장은 약 10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 전 학장의 글을 발견했다. 윤 회장이 ‘제가 작품을 좀 가지고 있고 원 화백을 존경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셨냐’고 댓글을 달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전시장에는 윤 회장이 소장한 16점, 김 전 학장이 소장한 65점을 비롯해 원 화백의 작품 100여 점과 기록을 볼 수 있다.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정갈한 정물화와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원 화백은 미술 이론서를 탐독하고 자신감도 넘쳤지만 세상과 교류하지 않았던 작가”라며 “먼지처럼 흩어질 뻔한 운명을 소장가들이 잡아준 것”이라고 했다. 5월 21일까지. 5000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