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의 런던 ‘멜버른’
열기구 타고 멜버른 도심 감상… 증기기관차로 아날로그 체험
필립섬에서 펼쳐지는 펭귄 퍼레이드… 백조의 호수엔 우아한 흑조가
241km 규모 ‘그레이트 오션 로드’…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멜버른 인근에서 1850년대 금광이 발견돼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이 찾아오는 골드러시로 일약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였기 때문이다. 시내에는 영국 빅토리아풍의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에는 세계 각국의 미식(美食)과 커피, 차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도심 외곽으로 1, 2시간만 벗어나면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희귀 야생동물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진귀한 체험이다.》
멜버른 시내 89층 높이의 ‘유레카 타워’에 올라가면 도심 마천루 빌딩부터 바다까지 360도 전망이 가능하다. 시내를 관통하는 야라강 가에는 이른 새벽부터 젊은이들이 노를 젓는 조정 경기정들이 떠다닌다. 그런가 하면 빅토리아 양식의 기차역과 아케이드가 있는 시티 지역에는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다닌다.
●최첨단 도시에서 즐기는 슬로 여행
그라피티로 유명한 호저레인 골목길은 ‘미사 거리’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소지섭, 임수정 주연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1868년 개장한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장 활기찬 멜버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오전 6시에 문을 여는 이곳은 과일과 해산물, 의류와 잡화까지 다 판다. 심지어 캥거루 고기, 악어 고기도 구할 수 있다.
이러한 멜버른의 도심을 감상할 수 있는 더욱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기구를 타고 도심의 하늘을 나는 것.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 이집트 룩소르처럼 한적한 초원이나 사막 위로 나는 풍선이 아니라 마천루 빌딩 위를 비행하며 일출을 보는 풍선이다.
오전 5시 50분.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으로 ‘글로벌 벌루닝(Global Ballooning)’이란 이름이 새겨진 승합차가 왔다. 차량은 멜버른 서쪽 야라강 하구 뉴포트파크에 멈춰 섰다. 풍선의 입구에 바람을 밀어넣고, 가스 불꽃을 뿜어대니 풍선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항구의 컨테이너, 크루즈선, 도심의 빌딩 숲, 그리고 바다….
남서풍에 실려 가는 풍선은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기계적 동력장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체험이다. 요트를 탈 때 엔진 소리 없이 산들산들 미끄러져 가는 것처럼, 풍선도 조용히 바람에 실려 갔다. 도심의 빌딩 너머로 해가 떠오르자 구름 사이로 붉은 햇살이 내비친다. 열기구는 70∼80층 건물이 즐비한 멜버른 도심 위를 날아 약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멜버른 동북쪽 크리켓 경기장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즐기는 아날로그 체험은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의 퍼핑빌리 열차에서도 할 수 있다. 1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증기기관차가 원시림 사이를 구불구불 달려 나간다.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의 모태가 됐다는 증기기관차의 기관실에서는 실제로 화부가 땀 흘리며 삽으로 석탄을 퍼붓고 있다. 열차를 탄 후 야라밸리의 몬탈토 와이너리를 방문하거나,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멜버른의 초록색 자연을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필립섬에서 만난 펭귄과 블랙스완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40분 거리의 ‘필립아일랜드’는 자연이 잘 보전된 섬이다. 이곳에서는 펭귄과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흑조, 가시두더쥐 등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동물을 야생에서 만날 수 있다.
필립섬의 대표적인 명물은 바로 ‘리틀펭귄’. 키 30cm, 몸무게는 약 1kg. 지구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별칭은 ‘페어리(요정) 펭귄’이다. 서멀랜드비치에 가면 매일 평균 2000여 마리의 펭귄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2박 3일간 바다에서 먹이활동 후 일몰 시간대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리더 펭귄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수십 마리의 펭귄이 뭍으로 올라온다. 이후 적게는 5∼10마리씩 뒤뚱뒤뚱 집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바닷가 근처에 굴을 파놓은 펭귄은 금세 집을 찾아가지만, 산비탈을 넘어가는 펭귄은 멀게는 2km나 걸어서 집으로 간다. 배가 불룩한 펭귄 2마리가 고갯길에서 힘겨웠는지 배를 깔고 엎드려 쉬어 간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을 먹이려고 배 속에 물고기를 가득 채워 놨을까. 직장인 엄마, 아빠의 고단한 퇴근길이 떠올라 울컥한 장면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가족을 부르는 소리에 고요하던 필립섬은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필립섬 백조의 호수(Swan Lake)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호수 위에는 S자로 굽은 긴 목을 가진 새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모양은 영락없는 백조인데 몸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 흑조였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경제 용어로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특산종인 검은 백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스완레이크에 있는 조그만 통나무 집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숨어서 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망원경도 필요 없다. 호숫가 주변 풀밭에는 왈라비가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왈라비는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유대류인데, 몸집이 좀 작고 털 색깔이 짙다. 또 길쭉한 주둥이에 등에 뾰족한 바늘이 촘촘히 박힌 ‘가시두더지’도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통나무집에서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힐링의 호숫가였다.
●그레이트오션로드
호주 멜버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오션로드’는 총 241km에 이르는 해안도로다. 주변에는 도보 트레일 코스인 ‘그레이트오션워크(Walk)’도 있다. 빅토리아주 어촌 마을인 아폴로베이에서 시작되는 100km 구간으로, 해안 절벽과 숲, 바위를 통과하며 바닷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트레일의 마지막 목적지는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다.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을 따라 서 있는 12사도 바위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전 세계 50곳’에 늘 거론되는 곳이다. 파도의 침식으로 석회암 12사도상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트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아치(런던브리지)’에 가보니 파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아치는 1990년 1월 육지와 연결된 곶이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아치가 무너져 내려 섬이 됐다.
그레이트오션로드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12사도 바위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는 헬기를 타면 약 16분 동안 45km를 날아서 로크아드 협곡, 런던아치, 코끼리바위 등을 돌아볼 수 있다.
1919년에 시작된 그레이트오션로드 건설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귀향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됐다. 총 3000여 명의 참전 군인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건설에 참여했는데, 그들을 위한 기념비도 서 있다. 멜버른 현지 여행 가이드인 대니얼 서 씨는 “그레이트오션로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이라고 말했다.
여행 정보=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인천∼홍콩 3시간, 홍콩∼멜버른 8시간 걸린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인천∼홍콩 노선을 주 24회 운항하며, 홍콩에선 호주 3개 도시(시드니, 멜버른, 퍼스)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16분 동안 진행되는 12사도상 헬기 투어는 165호주달러(약 14만 원), 열기구 체험은 495호주달러(약 43만 원),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는 왕복 61호주달러(약 5만 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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